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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었다면?… 화염병에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by hyperblue 2010. 3. 23.

김석기 前 경찰청장 내정자

※ 조선일보 기사링크 :
[최보식이 만난 사람] '용산 참사' 때 물러난 김석기 前 경찰청장 내정자


조선일보에 김석기 前 서울청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읽어보며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안타까움과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 그 외의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석기 前 청장님은 내가 근무중인 경찰서의 서장을 지내기도 하셨다. 물론 내가 군복무하기 10년전인 98년에 취임하셨으니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부대 지휘관분들께 훗날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가끔 볼 수 있는 정겨운 '포돌이, 포순이'도 이 분이 창안하셨다. 게다가 군복무까지 전투경찰로 자원하셔서 마친, 뼛속부터 경찰이신 분이다.

김 前청장님의 작품, 포돌이 :)

김 前청장님은 지난 2009년 2월 10일, 용산참사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결국 前 경찰청장 내정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셨다. 개인적으로 참 가슴이 아팠다. 가끔 지휘관분들과의 대화를 하다가 얘기가 나오면, 강직한 성품을 갖고계신 '참경찰' 중의 한 분이시라며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우리 전의경들에게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대배치 받은 직후인 대략 2008년 8월쯤, 촛불집회의 후폭풍으로 경복궁, 광화문 일대로 출동을 나가던 그 때는 버스에서 숨도 못쉬고 두꺼운 완전진압복을 입은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정 넘은 시간까지 하차와 승차를 반복하던게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상황이 마무리 될 때 쯤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지휘무전망에서 김석기 前청장님의 치하, 격려무전이 흘러나왔다.

"서울청장입니다. 오늘도 더운 날씨에 늦은 시간까지 상황대비에 대단히 수고가 많았습니다..."

물론, 무전음어로 흘러나왔지만 차분한 말씨의 저 무전이 나오면 버스 안의 모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대로 향하곤 했다. 일부러 무전기 볼륨을 크게 키워놓고 자정이 다가오면 버스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두가 청장님의 저 '상황종료 무전'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렇게 목소리로나마 친숙해진 김 前청장님은 2009년 새해가 밝자, 서울의 모든 전의경 부대를 대상으로 새해인사겸 공문을 하나 내려보내셨다. 아직도 출동 전 전체교양시간에 부대 지휘관님이 대독(代讀)해준 그 공문의 내용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대충 요약하자면,

"난 여러분이 고생 많이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존에 있는 '경찰의 날'과 별개로 '전의경의 날'을 제정하여 여러분의 존재를 기억하고, 노고를 치하하겠다. 또한, 조건없는 분기별 특별외박을 실시하여 격무로 지쳐가는 여러분을 격려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다들 '분기별 특박'이라는 '신개념 당근(?)'에 열광했지만, 난 그 외에도 '전의경의 날'과 같은 단어가 참 감사했다. 역시, 본인이 전투경찰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우리를 참 많이 생각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약속은 김 前청장님이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시면서, 주상용 前서울청장님이 새로운 서울청장으로 취임하시면서 모두 무효, 백지화됐다.

난 김 前청장님을 실제로 뵌적도 있다. 용산참사가 터지면서 매 주말마다 성난 몇몇 국민들이 다시 촛불집회를 재현하려는듯 광화문과 종로에 모여들 때인 2009년 1월 말이었다. 정확한 일시는 기억안나지만 우리 중대가 서울지방경찰청을 수비하는 임무를 하달받아 서울청 정문근처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수수한 사복복장의 김 前청장님이 문을 걸어나오셨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갑자기 멋드러지게 각잡고 경례를 하는 서울청 자경대원의 모습과 순간적으로 뉴스에서 많이 접한 확실한 그 얼굴 때문에 나도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나를 보시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경례를 받아주시더니 곧장 어디론가로 다시 향하셨다. 당시에 쏟아지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포화 때문인지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총수의 자리를 목전에 두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떨군채 30년간 몸담았던 경찰조직에서 완전히 물러나셨다. 참 좋으신 분이셨는데 천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당시 경찰의 진압과 관련된 부분, 철거민들의 불법적인 저항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그 어떠한 결론도, 판단도 내리고 싶지 않다.

난 단지, 인터뷰 기사에서 김 前청장님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그 누가 당시의 경찰의 총수였더라도 비슷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까.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아닌, 경찰이라는 치안조직의 총수였다면 말이다.

"당시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시위대는 한강로 도로변 건물을 점거하고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도로에는 시간당 약 5000대 차량이 달린다. 만약 진압을 지연해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봐도 괜찮은가. 당시 현장 지휘관들은 진압작전에서 똑같은 견해였다. 검찰 조사에서 다른 식의 얘기를 왜 했는지 알 수 없다. 경찰은 정당한 업무를 수행했다. 안전하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경찰관이 들어오는 통로에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질 줄은 생각할 수 없었다. 진압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5명이 돌아가셨고, 고(故) 김남훈 경사가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당시 동영상을 봤지 않는가. 도로로 화염병이 날아오고 그걸 피하려고 택시가 곡예운전하는 것을….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면 인권위는 뭐라고 할 것인가. '경찰이 왜 빨리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도록 방치했느냐'고 하지 않았을까."

"경찰의 법집행이 잘못됐다는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그런 판결이 내려지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릴 건가. 화염병이 날아와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뜻하지 않은 인명사고가 난 결과 때문에 법집행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어느 경찰이 소신껏 법집행을 하고 위험에 나서겠는가."

"1차 공판 때 미국에 있는 관계로 불출석 사유를 냈다. 사실 그때 들어올까 말까 했다. 주위에서 '뭐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다. 이번 항소심에서도 부른다면 솔직히 출석할 용의가 있다. 난 당당하게 얘기하겠다. 미국 경찰에게 수도 워싱턴 안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은 아주 심플했다. 발포했을 것이라고 했다. 난 뉴욕 맨해튼 경찰서도 들어가 보고, 신고받고 출동하는 현장, 집회 현장, 경호현장도 직접 가봤다. 집회가 있으면 폴리스라인을 치고 기다린다. 그 선을 넘으면 사정없이 경찰봉으로 치고 팔을 꺾고 수갑채운다. 상대가 흉기를 들고 저항하면 총으로 쏜다. 그걸로 상황이 끝난다. 누구도 딴소리를 하지 않는다."

30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 물러나는 '영원한 포돌이', 김 前청장님의 퇴임사의 일부분으로 이 글을 줄인다.
 
앞으로도 다른 곳에서, 많은 이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청렴하고 강직한 '인간 김석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영원한 포돌이로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돕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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