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수험생, 2010~2012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by hyperblue 2011. 2. 21.

정말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이따금씩 생각나는 옛 기억들, 장소.
어떤 것들은 총천연색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그냥 흑백처럼 희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 때의 느낌만은 선명하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전의경 제도를 파헤치는 여러 TV프로그램을 보면서는 가장 최근의 총천연색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의 추억이 마구 떠올랐다.

눈을 감고 손만 뻗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던 예전의 동료들, 선임도 후임도, 끔찍이 싫어했던 지휘관들도 어느덧 추억의 한 켠에서는 아름다운 내 인생의 동료가 되어 내게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큰 시위현장에서의 강렬한 기억들도, 평생 잊지못할 나의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의무경찰은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지만, 정말 처음 겪을 때 그 신선하면서도 엄청난 충격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아무나 하기 힘든 값진 경험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입대 전에 있던 여러가지 일들. 아름다웠던 학교 캠퍼스도, 내가 가르쳤던 여러 과외학생들도(아직 이름도 다 기억나는 것 같다), 밴드'질'을 하며 기타를 등에 업고 내집처럼 오가던 홍대의 그 특유의 분위기와 풍경도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간 인생의 강렬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고들 하던데 위의 것들은 정말 꼭 나올 것만 같다.

책과 씨름하다보면 딴 생각을 할 때가 꽤나 많다. 그리고는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며 회상에 잠긴다. 정말 그 때가 너무 행복하고 좋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아름다웠던, 독특했던, 짜릿했던 그 수많은 기억들은 나를 그 시궁창에서 침전하지 않게 지탱해주는 엄청난 힘이다. 그닥 좋지 못한 나의 머리에서 오랫동안 남아주는 나의 소중한 추억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만들어주는 모든 사람들.

나를 갈구고 괴롭혔던 못된 고참이었던 당신, 나에게 "씨발새끼"라고 외치며 시위대의 역할을 충실히 했던 당신, 나와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았던 당신, 함께 캠퍼스의 풀밭에 누워서 떠가는 구름을 보며 청운의 꿈을 한껏 품었던 당신, 나릉 사랑했던 당신, 내가 힘들 때 내게 음료수 한 캔을 쥐어주며 "인생 별거 있냐"며 등을 토닥여준 당신, 교통정리를 하던 내게 고생한다며 초코파이를 하나 쥐어주고 유유히 사라진 당신, 알게 모르게 여러번 스쳐지나간 당신들 모두에게,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랑합니다.

꼭 그 대상이 특정지어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 글을 보는 당신, 이 세상을, 그리고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해줬던 당신에게 나의 고마움을 전한다.

p.s. 혹시 이 글을 볼지 모르는 나의 동료들! 다들 열심히 살고 있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추억하는 나를 보며 너희들이 얼마나 내게 큰 의미었는지 알게 된다. 은색 참수리를 모자에 하나씩 달고 가끔은 동네 양아치마냥, 가끔은 멋진 군인의 모습으로 서울 방방곡곡을 폭풍처럼 누비던 그 때의 자부심과 깡으로 더욱더 열심히 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