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긴 왔구나.봄이 오긴 왔구나.

Posted at 2010/03/06 17:24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봄이 오긴 왔나보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아직 벚꽃이 휘날리진 않지만, 느낌만은 곧 여기저기에서 흐드러지게 필 것 같다.

애증의 용산. 용산참사와 그 후폭풍이 내게 용산을 악몽의 도시로 만들었다. 막상, 다 정리되니 다시 제 모습을 찾은듯 하다. 이촌역 근처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근무하다가 쉴 때, 가끔 가서 놀러온 가족들과 커플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입대 전에, 누군가랑 똑같은 곳에 놀러가서 눈에 띄는 주변의 전의경을 보며, '여기에도 전의경이 근무하나?'란 궁금증을 가졌었다. 이제는 안다. 근처에서 미8군 시설경비 근무중에 공원에 쉬러 온 대원들이란 것을.

내가 바라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가 된다는 경험은 참 이상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2008년 8월, 방패를 앞에 두고 경복궁 동문 앞에서 로보트 마냥 멍하니 정면을 뚫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혹시..어!"하면서 말을 걸었다. 2006년, 1학년 때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해졌던, 나이가 좀 많은 동기였다. "너 군대갔다더니 여기 있구나. 고생 많네."라고 말을 건네는 그가 참 부러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왜 하필 이런 바보같은 모습일 때 마주치는 걸까. 그 후로도 많은 지인들을 거리 곳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의경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당연히 장점이 아닐까 싶다.

1년은 또 눈깜짝할새 흘렀다. 작년 이 맘때는 지금 이 순간이 올까 싶었는데, 이제는 위에 고참이 없다. 모두가 집에 갔다. 언제 집에 가냐고 놀리던 고참들이 아무도 없다. 좀 섭섭하다. 장난 반, 갈굼 반으로 놀리고 괴롭히던 고참들이 없으니 심심하기도 하다.

늘 꿈꿔왔던 중대왕고가 됐지만, 별로 좋은 것도 없다. 그저 집에 가고싶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개인의 자기개발보다는 부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내게 맡겨진 임무가 있는만큼, 이 직분을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는 그 날까지 난 우리 중대원들과 중대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막상 전역의 그 날이 오면, 남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 흔한 자격증도 고작해야 쉬운 ITQ 하나. 내게 지금 남은 것은 몇날몇일을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2년 군생활의 독특하고 잊지못할 추억들과 좋은 사람들 뿐이다. 난 여기에서 이거라도 얻었으면 됐다며 또 자위하고 있다.

오늘은 아침일찍부터 용산 미8군 시설경비를 나갔다가 왔다. 올림픽대로, 등받이를 편히 뒤로 제낀 버스 뒷좌석, 활짝 연 창문 사이로 내 허파를 구멍낼듯이 세차게 밀고들어오는 시원한 강바람, 그리고 강건너 강북의 풍경. 죽을 때 까지 잊지못할 내 군생활의 소중한 한 장면이다. 오늘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들은 Red Hot Chili Peppers의 Otherside가 또 내 머릿속에 노래하나와 풍경하나를 짝짓기해주었다.

Red Hot Chili Peppers - Otherside


옆에서 '시간 더럽게 안간다'며 툴툴거리는 동기. 그리고 그가 찍어준 사진 한장. 봄날의 전쟁기념관에서 난 또 영원히 지우지 못할, 지우지 않을 추억 하나를 억지로라도 사진에 박아 넣는다. 내가 이렇게 보낸 오늘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깐. 남는 것은 오직 기억뿐이니깐. 그리고 그 기억의 재생을 도와주는 사진뿐이니깐.

성큼성큼 다가오는 전역의 그 날을 고대하며ㅡ

100306, @용산 전쟁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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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 많던 '닭장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9. 그 많던 '닭장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Posted at 2010/03/05 22:44 | Posted in 의경, 의무경찰/의경 블루스


[의경블루스 - 9] 그 많던 '닭장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울광장 옆.

서울시내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경찰버스. 사람들은 '전경버스', '닭장차' 등으로 많이 부른다. 하지만 요즘에는 '닭장차'를 찾기 힘들 것이다. 아니, '닭장차'는 더 이상 없다. 대신 왼쪽과 같이 새것으로 보이는 깔끔한 버스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인지 몇몇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경찰청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닭장차를 죄다 새것으로 바꾸었다'라는 루머이다. 뭐, 관심도 별로 없고, 생각 없는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이렇게 버스들이 하나하나씩 교체되던 과도기에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또, 약간의 '두근거림'도 있었다.

'우리 부대 버스도 곧 바뀌는 건가?!'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니, 역시나 그랬다. 일단, 저 깔끔한 버스들은 거의 다 '도색된' 차량이다. 물론, 새것으로 교체된 버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이 도색된 것이었다. 아래에 볼 수 있듯이 경찰청의 계획에 따라 전국 모든 경력수송버스의 도색이 이루어졌다. 내가 짬밥이 안됐기 때문일까..한창 광화문과 종로로 출동을 나가던 시절 꿈꿨던 '신형 버스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촛불시위 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봐오던 오른쪽과 같은 닭장차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내가 부대에 전입한 2008년 8월 초에는 모든 버스들이 다 이러한 형태였다. 우리 부대의 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 닭장차 안에서 바깥세상을, 두꺼운 철망이 달린 창을 통해 힐끗힐끗 봐야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촛불시위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우리 부대 버스도 철망을 벗었다. 어찌나 무겁던지, 운전대원이던 고참의 명령에 따라 그 쇳덩이를 떼어서 나르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더 열받는 사실은, 그런 상태로 있다가 또 큰 시위가 있으면 철망을 옮겨와서 다시 부착했다는 것. 정말 말그대로 짜증났다. 그러던 때에 갑자기 방송뉴스와 신문 등에 경찰버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동아일보기사 링크 : 경찰버스, 철망 대신 쇠파이프 견디는 ´PC창문´ 교체

두꺼운 철망이 없어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닭장차라는 오명 탈피 및 대민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존의 철망을 제거하고 위와 같은 특수 창문으로 교체한 것이다. 근데, 난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다. '왜 모든 부대의 버스에 적용하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이런 창문교체는 시위진압전담인 기동대와 전투경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속한 방범순찰대는 아직도 그냥 일반버스와 같은 유리창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찌보면 일의 순서를 따졌을 때 당연한 일이다. 방범순찰대 보다는 기동대와 전경대가 집회관리 및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빈도나 정도가 높기 때문에 우선적인 교체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일부 부대의 경우, 1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그대로라는 것이다. 철망을 제거한 뒤 아직도 '강화창문'으로 교체되지 않았다. 그냥 일반버스와 같은 유리창에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선팅만 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리부대 버스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평택쌍용차공장 지원 때, 우리부대 버스.


현재 서울시내의 방범순찰대 중에는 위와 같은 상태로 운행되는 버스가 많다. 강화창문으로 교체된 버스가 있어도 부대의 버스 3대중에 일부만 그러한 경우가 많다.(c.f. 일반적인 의경중대는 출동시에 3개 소대로 운용되며, 각 소대가 1대의 버스에 나눠 탑승한다.)

난 굉장히 황당했다. 내가 지금도 타는 이 버스는 돌이나 기타 시위용품, 화염병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어떠한 자기방어기제도 갖추지 않았다. 물론, 요즘의 시위양상을 볼 때, 화염병이나 기타 극렬시위용품이 쉽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 정말 최악의 경우, 철야근무를 위해 정차되어 있는 경찰버스에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창문 안쪽으로 인화성 물질을 투척하면 부대원 모두가 다 죽을 수 있다.

특히 2009년 여름, 용산참사의 후폭풍으로 참사현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근무를 하며 밤을 지새울 때 나는 이런 위협을 많이 느꼈다. 여름에는 너무나 덥기 때문에 버스의 창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철야하는 경우가 많다. 에어컨이 있지만, 주민들의 민원문제가 있기 때문에 항상 틀어놓고 있을 수가 없다. 고로,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조금이나마 열어야 한다. 모든 소대원이 다 자고, 나 혼자 버스에 깨어있을 때, 버스 옆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다. 차라리 철망이 있는 기존의 '닭장차'였다면, 이런 안전문제에 대한 걱정은 좀 덜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찰의 이미지 제고'라는 명목 하에 전의경들의 생명을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악감정이 충분히 고조되어 있었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윗분들이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버스를 타고 군생활을 오랫동안 해나가야할 내 후임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미교체된 버스들에 대해서도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일반시민들에게 버스는 단순한 운송수단이겠지만, 우리 전의경들에게는 이 버스는 '또 하나의 집'이다. 출동 시에 부대의 이동을 비롯한 숙식 등이 모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로와 광화문 등지에서 철제 식판을 들고 있거나 도시락을 집단배식중인 전의경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식사는 모두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기본적인 휴식도 마찬가지이다. 창문이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잠을 자면서 근무의 피로를 푸는 것도 모두 이 버스 안이다. 철야를 하면서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시위시즌에는 부대보다 이 버스 안에서 더 오래있게 된다.

평택쌍용차공장 지원 때, 우리소대 버스 안.


우리소대 '닭장차'의 내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버스에는 하이바와 방패, 진압봉, 방독면을 비롯한 부대의 모든 진압용품이 있고, 우리의 땀냄새와 숨결이 배어있다. 예전에는 가혹행위도 이 버스 안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아무래도..이 폐쇄적인 공간에 20명 남짓한 남자들끼리 부대끼다보면..여러가지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아, 또 이 경찰버스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차벽'기능이다. 말그대로 '차로 만든 벽'이다. 수많은 시위대를 수적으로 열세인 전의경진압부대가 몸으로 다 막아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이 버스이다. 말 그대로 '벽'이 되어 시위대의 진로를 차단하는데 유용한 기능을 한다. 이런 차벽기능 때문에 경찰버스에 구조적으로 특별히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비상문'이다. 이 비상문은 버스 가장 뒷좌석 왼편에 일반 승용차처럼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평소에는 전혀 쓰지 않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차벽으로 쓰이던 버스가 고립되어 앞과 중간에 위치한 일반적인 출입문이 봉쇄된 경우 비상탈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故노무현前대통령 추모'때의 차벽은 촛불시위나 여타 큰 시위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 촘촘함과 정교함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하는 이 버스를 대부분의 시민들은 애물단지로 취급하며 온갖 민원을 제기한다. '시위가 없는 때에도 종로와 광화문에 늘상있는 전경버스들이 교통불편을 야기하며 흉물스럽다.'라는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종로와 광화문에는 미대사관과 청와대길목 등 경찰이 365일 24시간 단 한시도 그 자리를 비우면 안되는 곳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에는 언제나 전의경이 있다. 버스는 이런 많은 부대들의 운송수단이자 유일한 휴식처인데,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책없이 무조건 '까기'만 하는 시민들을 보면 좀 많이 야속하다. 당연히 매연과 같이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면 안되나 싶다. 아직까지는 전의경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서인지 이 버스 밖을 나서면 난 항상 긴장하게 된다. 나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군복무를 하는 것인데, 시민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현실이 괜시리 서글플 때도 많다.

어쨌든, 경찰버스는 나에게 있어 악몽이요, 추억이요, 내 군생활의 모든 것이다. 이 버스 없이는 의경생활을 논할 수도 없다. 부디 앞으로는 아래와 같은 경찰버스들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촛불시위의 희생양.



전의경들에게는 '경찰버스'나 '전경버스'보다는 그것을 뜻하는 무전음어인 '기X마'라는 호칭이 더 친숙한 이것. 경찰청에서는 하루빨리 모든 부대의 버스를 개선해서 전의경들의 안전을 비롯한 제반 문제에 신경을 좀 더 써줬으면 좋겠다.

p.s. 서울의 경우, 전의경중대의 버스는 대부분 직원(간부)이 아닌 대원(병사)이 운행한다. 부대에서 '1종 보통 면허취득이 1년 이상'인 대원들을 자체적으로 뽑아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운전교육대에서 입교시킨 후, 소정의 운전교육을 이수하게끔 하고, 1종 대형면허를 취득한 후(물론, 공짜) 부대로 돌아온 대원들을 운전대원으로 운용한다. 지방은 직원들이 한다고 알고 있는데, 요즘에 '운전특기병'을 입대 전에 따로 뽑는 것 같아서 어떻게 될지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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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군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엑셀나의 군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엑셀

Posted at 2010/02/27 19:39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나는 요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두달도 안남았는데, 내 머리는 신병 때 보다 더 짧다. 지나치게 가혹한 두발관리 강요(?)때문에 그러하다. 작년 前서울지방경찰청장이신 주청장님의 미친듯한 '용모복장 단정강조'로 일선 중대에 죄다 비상이 걸리고, 난리가 난건 사실이다. 그 때 부터 머리를 조금이라도 기르는건 상상도 안했다. 신병시절에 봤던 왕고급 고참들의 장발머리를 보며 '나도 짬밥 먹으면 저렇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전역을 두달여 남겨둔 지금의 내 머리는 훈련소 때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요즘도 용모복장과 관련된 부분은 계속 강조되고 있고, 우리 중대는 자체적으로도 중대원 용모복장관리에 힘쓰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매주 월요일을 용모복장단정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이 날은 당직소대장이 일석점호 때 직접 피복류와 두발 등 전반적인 용모복장을 점검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모두들 적극적인 협조를 하고 있지만, 유독 1소대장님께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가혹한 자체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하지만 지휘관은 지휘관. 대원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소용이 없다. 어쨌든, '1소대장님이 당직소대장인 월요일'을 피하면 그나마 좀 숨통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욕구가 나로 하여금 아래와 같은 엑셀문서를 만들게 했다..-_-;

문서에 활용한 엑셀함수래봤자 and 함수, countif 함수, weekday 함수가 전부.

ITQ 딴다고 엑셀을 조금 끄적거린게 나름 쓸모가 있는듯 싶다. 함수를 활용하고 더 합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귀찮아서 여기까지 ㅡ

난 전역할 때 까지 3번만 무사히 넘기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간 많고 할 일 없으니 나도 참 별짓을 다 한다. 하지만 이게 다 살기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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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맞는 생일도 외롭지 않아!군에서 맞는 생일도 외롭지 않아!

Posted at 2010/02/05 18:44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군에서 2번의 생일을 보내는게 보통이다. 뭐, 휴가나 외박이 겹쳐서 부대 밖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도 희박하거니와 휴가나 외박중에도 군인은 군인. 나도 작년 생일을 부대에서 보냈고, 군에서 맞는 두번째 생일을 두달여 앞두고 있다. 생일, 이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가 안챙겨주면 괜시리 섭섭하고, 쓸쓸해진다. 특히 남자들끼리 서열놀이하며 살아가는 군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

우리 중대는 자체적으로 '생일자 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생일 당일 하루, 면회를 할 사람은 면회를 하고, 사정이 안되는 사람은 부대에서 맘편히 휴게를 취할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다. 군생활중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난 작년 생일 때 부모님과 면회를 하며 군에서 맞는 아쉬운 생일을 달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내가 고참이 되어 후임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챙겨주진 못하더라도 먼저 축하해주는 위치가 되었다. 하얗고 값비싼 생크림케이크는 없어도, 군인 최고의 간식인 초코파이로 만든 생일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고 축하해준 후 나누어 먹는다. 안챙겨주는 것 보다는 백만배 낫다. 적어도 이 순간만이라도 서글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소대에서 이상하게 관습(?)처럼 되어버린 것이 노래를 부르며 초코파이위에 꽂힌 생일초를 끈 후, 생일자와 함께 소대단체사진을 찍는 것이다. 벌써 올 해에만 두장이나 찍었다. 우울하다가도 가끔 이런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새삼 실감난다고나 할까.

제 아무리 군인이지만,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 내 군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

이상하게 난 다 오른쪽 앞줄에 있네. 볼 때마다 기분좋아지는 사진들의 예시를 아래에 첨부한다!

병규 생일 때.

승완이 생일 때. 표정이 다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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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이 만들어준 내 침상 이름표.후임이 만들어준 내 침상 이름표.

Posted at 2009/10/15 18:11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참....고맙다. 이런 장난을 칠줄은 몰랐다.
가볍게 웃음짓게 만들어준 장난 :)

남자들끼리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군생활은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다.

내 자리임. 접근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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