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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10.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
Posted at 2010/03/16 08:43 | Posted in 의경, 의무경찰/의경 블루스[의경블루스 - 10]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
보는 이를 소름끼치게 만드는 한 장의 그림. 광화문 광장 쪽 대로 쪽에서 바라보는 미대사관 근무중대 경찰버스의 배치 모습이다.(물론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버스가 주차된다.) 그림 좌측(북측)엔 미대사관, 사진의 가운데에 보이는 종로소방서, 그림 우측(남측)에는 KT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림에 보이지 않는 왼쪽 미대사관 본 건물 외벽주위에는 전의경들이 코너마다,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곳은 서울의 전의경이 마주하는 가장 최악의 근무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5일 24시간, 단 1초도 경비경찰이 자리를 비우면 안되는 곳. 요즘에는 '전담중대' 개념이 생겨서 모든 상설진압중대가 골고루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지는 않는다. 청에서 지정한 기동대와 전경대 몇개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는게 요즘의 패턴.('시설전담'의 개념에 대해서는 추후에 소개)
내 기억에는 작년에 주상용 前 서울청장님이 부임하면서 근무가 위와 같이 전담 개념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중요한 경비근무지인만큼 중대를 몇개 지정해 근무돌려서 그들의 현장대응역량을 강화하는게 낫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서울의 상설중대가 모두 돌아가면서 시설경비를 했더랬다.
그렇게 서울 모든 상설중대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설 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찾아왔다.
2008년 12월 말, 크리스마스 즈음의 유난히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재수없게도 미대사관 철야가 걸렸다. 복장은 근무복. 짬밥은 안될 때 였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고참들 몰래 양말을 여러겹 신었다. 그렇게 근무지에 배치됐다. 그 날 나의 두번째 근무였나? 새벽 2시~4시, 대로를 바라보고 부동자세로 홀로 앞을 뚫고 근무에 임했다. 광활한 광화문 벌판의 미친듯한 칼바람이 엄습했다. 목토시로 아무리 얼굴을 가리려고 노력해도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콧물도 마구 흘렀다. 너무 추워서 손을 움직여 닦을 엄두도 안났다. 발은 깨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추위가 아니라 통증 수준이었다. 얼어버린 얇은 경찰단화 가죽을 뚫고, 한기가 마구 들어왔다. 양말을 여러겹 신은게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감각도 없어지고 너무 아팠다. 왜 이런날 얇은 경찰단화를 신고 근무를 하게 했는지 상부가 야속했다. 하긴, 밖에서 실제로 근무를 서지 않는 그들이 이런걸 신경이나 쓸까. 길 건너편에 보이는 세종문화회관 전광판 시계를 아무리 쳐다봐도 1분, 1분이 힘겹게 흘러갔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생각하면서 오만 생각을 다 하며 2시간을 버티다보니 어느덧 근무교대시간. 추워서 졸 수도 없었다. 졸다가 정신잃으면 죽겠구나 싶어서 정신은 깨어 있었다. 다시 버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살아있는지 자가점검을 하자 코와 입을 덮고 있던 검은 목토시 쪽에 콧물과 입김이 고드름이 되어 맺혀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죽어도 잊지못할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의 악몽.
전방의 육군이야 오죽하겠냐만은, 혹한기 미대사관 철야근무는 서울의 전의경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근무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새벽 한가운데 근무를 서야하는 짬밥안되는 쫄병급이라면 더더욱.
지금 이 시간도 열심히 미대사관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미외교의 최전방을 수비한다고 생각하면 아무 이유없다고 느껴지는 이 근무도 조금은 할만하다.
아래는 엊그제 광화문에서 철야를 하고나서 이른 아침에 찍은 사진. 맨 위의 그 종로소방서가 우뚝 서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경찰버스가 우리중대의 버스였다. 근무는 미대사관 시설경비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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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긴 왔구나.봄이 오긴 왔구나.
Posted at 2010/03/06 17:24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봄이 오긴 왔나보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아직 벚꽃이 휘날리진 않지만, 느낌만은 곧 여기저기에서 흐드러지게 필 것 같다.
애증의 용산. 용산참사와 그 후폭풍이 내게 용산을 악몽의 도시로 만들었다. 막상, 다 정리되니 다시 제 모습을 찾은듯 하다. 이촌역 근처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근무하다가 쉴 때, 가끔 가서 놀러온 가족들과 커플들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입대 전에, 누군가랑 똑같은 곳에 놀러가서 눈에 띄는 주변의 전의경을 보며, '여기에도 전의경이 근무하나?'란 궁금증을 가졌었다. 이제는 안다. 근처에서 미8군 시설경비 근무중에 공원에 쉬러 온 대원들이란 것을.
내가 바라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내가 된다는 경험은 참 이상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2008년 8월, 방패를 앞에 두고 경복궁 동문 앞에서 로보트 마냥 멍하니 정면을 뚫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혹시..어!"하면서 말을 걸었다. 2006년, 1학년 때 같은 수업을 들으며 친해졌던, 나이가 좀 많은 동기였다. "너 군대갔다더니 여기 있구나. 고생 많네."라고 말을 건네는 그가 참 부러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왜 하필 이런 바보같은 모습일 때 마주치는 걸까. 그 후로도 많은 지인들을 거리 곳곳에서 우연히 만났다. 의경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당연히 장점이 아닐까 싶다.
1년은 또 눈깜짝할새 흘렀다. 작년 이 맘때는 지금 이 순간이 올까 싶었는데, 이제는 위에 고참이 없다. 모두가 집에 갔다. 언제 집에 가냐고 놀리던 고참들이 아무도 없다. 좀 섭섭하다. 장난 반, 갈굼 반으로 놀리고 괴롭히던 고참들이 없으니 심심하기도 하다.
늘 꿈꿔왔던 중대왕고가 됐지만, 별로 좋은 것도 없다. 그저 집에 가고싶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개인의 자기개발보다는 부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내게 맡겨진 임무가 있는만큼, 이 직분을 후임에게 인수인계하는 그 날까지 난 우리 중대원들과 중대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막상 전역의 그 날이 오면, 남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 흔한 자격증도 고작해야 쉬운 ITQ 하나. 내게 지금 남은 것은 몇날몇일을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2년 군생활의 독특하고 잊지못할 추억들과 좋은 사람들 뿐이다. 난 여기에서 이거라도 얻었으면 됐다며 또 자위하고 있다.
오늘은 아침일찍부터 용산 미8군 시설경비를 나갔다가 왔다. 올림픽대로, 등받이를 편히 뒤로 제낀 버스 뒷좌석, 활짝 연 창문 사이로 내 허파를 구멍낼듯이 세차게 밀고들어오는 시원한 강바람, 그리고 강건너 강북의 풍경. 죽을 때 까지 잊지못할 내 군생활의 소중한 한 장면이다. 오늘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들은 Red Hot Chili Peppers의 Otherside가 또 내 머릿속에 노래하나와 풍경하나를 짝짓기해주었다.
Red Hot Chili Peppers - Otherside
옆에서 '시간 더럽게 안간다'며 툴툴거리는 동기. 그리고 그가 찍어준 사진 한장. 봄날의 전쟁기념관에서 난 또 영원히 지우지 못할, 지우지 않을 추억 하나를 억지로라도 사진에 박아 넣는다. 내가 이렇게 보낸 오늘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깐. 남는 것은 오직 기억뿐이니깐. 그리고 그 기억의 재생을 도와주는 사진뿐이니깐.
성큼성큼 다가오는 전역의 그 날을 고대하며ㅡ
100306, @용산 전쟁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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