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2010년 상반기 제2기동단 지휘검열G20 정상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2010년 상반기 제2기동단 지휘검열
Posted at 2010/04/01 21:18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우와, 제목 길다.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 지휘단상 위에 걸린 플래카드의 문구가 이러하다. 오늘로서 내 처음이자 마지막 단검열(기동단에서 주관하는 지휘검열)이 끝났다. 우리 중대는 어느 순간부터(?) 2기동단 소속 중대들이 움직일 때 마다 상황대비 때 같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검열까지 같이 받았다. 물론, 방순대이기 때문에 2기동단의 일선 기동대, 전경대가 하는 만큼의 수준을 요구받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기동단 지휘검열에 참여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세트(?)로 묶여서 각종 집회, 상황에 같이 나가는 바로 옆 동네 강남경찰서 방범순찰대를 비롯하여 혜화경찰서, 용산경찰서, 강동경찰서 방순대 등 방범순찰대는 총 5개 중대가 오늘 2기동단 지휘검열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혜화경찰서 방순대가 참 인상깊었다. 혜화방순대는 옛날부터 '서울 사대문 안쪽 방순대'로서 그 명성이 방순대 가운데 자자했는데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검열 직전에 자체훈련하는 모습과 검열 당시의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 서울의 31개 방순대 중에 손꼽히는 '엘리트 방순대'라고 할만 했다.
이외에 2기동단 소속 의경 기동대인 21, 22, 23, 25중대, 그리고 전경대인 602, 717, 801, 802중대, 직원기동대(경찰관기동대)인 2기동대, 9기동대, 11기동대 등이 모두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오늘 검열은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은게,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두꺼운 진압복 위에 우의를 입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정말 진압검열을 하려나 싶었는데, 우리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이 지휘검열을 위해 꽤 여러날을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과 그 밖의 여러 훈련지에서 목이 쉬어가며 굵은 땀방울을 쏟은 동료 대원들과 나 자신, 그리고 함께 검열을 받은 다른 중대원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연이어 있을 수 많은 큰 집회들과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G20 정상회의에서 오늘날의 훈련과 검열경험이 바탕이 되어 후임대원들이 시위대의 불법폭력시위를 엄정하고, 안전하게 잘 관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내부의 적과 싸우며 법질서를 수호하는 자랑스런 경찰관이자 군인이라는 점을 항상 잊지 말자.
개인적으로, 중대무전병으로서 오늘까지의 훈련과 진압검열을 지휘한 것을 군생활의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궂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휘검열 받는데 애쓰신 제2기동단 소속 기동대, 전경대 여러분과 5개 방순대 동료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Miscellanies > 의무경찰, 2008~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의 기도 (0) | 2010/04/08 |
|---|---|
| [EOS 500D] 화사한 봄날, 진압용품, 장비정리- (0) | 2010/04/03 |
| G20 정상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2010년 상반기 제2기동단 지휘검열 (14) | 2010/04/01 |
| 제대를 한 달여 앞두고. (0) | 2010/03/28 |
| [EOS 500D] 따뜻한 봄날의 연합진압훈련 제2탄!(사진多,스크롤주의^-^) (0) | 2010/03/26 |
|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었다면?… 화염병에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2) | 2010/03/23 |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었다면?… 화염병에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었다면?… 화염병에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Posted at 2010/03/23 19:26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김석기 前 경찰청장 내정자
조선일보에 김석기 前 서울청장님의 인터뷰 기사가 떴다. 읽어보며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안타까움과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 그 외의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석기 前 청장님은 내가 근무중인 경찰서의 서장을 지내기도 하셨다. 물론 내가 군복무하기 10년전인 98년에 취임하셨으니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부대 지휘관분들께 훗날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가끔 볼 수 있는 정겨운 '포돌이, 포순이'도 이 분이 창안하셨다. 게다가 군복무까지 전투경찰로 자원하셔서 마친, 뼛속부터 경찰이신 분이다.
김 前청장님의 작품, 포돌이 :)
내가 자대배치 받은 직후인 대략 2008년 8월쯤, 촛불집회의 후폭풍으로 경복궁, 광화문 일대로 출동을 나가던 그 때는 버스에서 숨도 못쉬고 두꺼운 완전진압복을 입은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정 넘은 시간까지 하차와 승차를 반복하던게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상황이 마무리 될 때 쯤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지휘무전망에서 김석기 前청장님의 치하, 격려무전이 흘러나왔다.
"서울청장입니다. 오늘도 더운 날씨에 늦은 시간까지 상황대비에 대단히 수고가 많았습니다..."
물론, 무전음어로 흘러나왔지만 차분한 말씨의 저 무전이 나오면 버스 안의 모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대로 향하곤 했다. 일부러 무전기 볼륨을 크게 키워놓고 자정이 다가오면 버스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두가 청장님의 저 '상황종료 무전'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렇게 목소리로나마 친숙해진 김 前청장님은 2009년 새해가 밝자, 서울의 모든 전의경 부대를 대상으로 새해인사겸 공문을 하나 내려보내셨다. 아직도 출동 전 전체교양시간에 부대 지휘관님이 대독(代讀)해준 그 공문의 내용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대충 요약하자면,
"난 여러분이 고생 많이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존에 있는 '경찰의 날'과 별개로 '전의경의 날'을 제정하여 여러분의 존재를 기억하고, 노고를 치하하겠다. 또한, 조건없는 분기별 특별외박을 실시하여 격무로 지쳐가는 여러분을 격려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다들 '분기별 특박'이라는 '신개념 당근(?)'에 열광했지만, 난 그 외에도 '전의경의 날'과 같은 단어가 참 감사했다. 역시, 본인이 전투경찰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우리를 참 많이 생각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약속은 김 前청장님이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시면서, 주상용 前서울청장님이 새로운 서울청장으로 취임하시면서 모두 무효, 백지화됐다.
난 김 前청장님을 실제로 뵌적도 있다. 용산참사가 터지면서 매 주말마다 성난 몇몇 국민들이 다시 촛불집회를 재현하려는듯 광화문과 종로에 모여들 때인 2009년 1월 말이었다. 정확한 일시는 기억안나지만 우리 중대가 서울지방경찰청을 수비하는 임무를 하달받아 서울청 정문근처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갑자기 수수한 사복복장의 김 前청장님이 문을 걸어나오셨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갑자기 멋드러지게 각잡고 경례를 하는 서울청 자경대원의 모습과 순간적으로 뉴스에서 많이 접한 확실한 그 얼굴 때문에 나도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다. 나를 보시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경례를 받아주시더니 곧장 어디론가로 다시 향하셨다. 당시에 쏟아지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포화 때문인지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총수의 자리를 목전에 두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떨군채 30년간 몸담았던 경찰조직에서 완전히 물러나셨다. 참 좋으신 분이셨는데 천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당시 경찰의 진압과 관련된 부분, 철거민들의 불법적인 저항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그 어떠한 결론도, 판단도 내리고 싶지 않다.
난 단지, 인터뷰 기사에서 김 前청장님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그 누가 당시의 경찰의 총수였더라도 비슷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까.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 아닌, 경찰이라는 치안조직의 총수였다면 말이다.
"당시 동영상을 봤지 않는가. 도로로 화염병이 날아오고 그걸 피하려고 택시가 곡예운전하는 것을….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면 인권위는 뭐라고 할 것인가. '경찰이 왜 빨리 제대로 진압하지 못해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도록 방치했느냐'고 하지 않았을까."
"경찰의 법집행이 잘못됐다는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그런 판결이 내려지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기다릴 건가. 화염병이 날아와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뜻하지 않은 인명사고가 난 결과 때문에 법집행이 잘못됐다고 한다면, 어느 경찰이 소신껏 법집행을 하고 위험에 나서겠는가."
"1차 공판 때 미국에 있는 관계로 불출석 사유를 냈다. 사실 그때 들어올까 말까 했다. 주위에서 '뭐 시끄럽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다. 이번 항소심에서도 부른다면 솔직히 출석할 용의가 있다. 난 당당하게 얘기하겠다. 미국 경찰에게 수도 워싱턴 안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답변은 아주 심플했다. 발포했을 것이라고 했다. 난 뉴욕 맨해튼 경찰서도 들어가 보고, 신고받고 출동하는 현장, 집회 현장, 경호현장도 직접 가봤다. 집회가 있으면 폴리스라인을 치고 기다린다. 그 선을 넘으면 사정없이 경찰봉으로 치고 팔을 꺾고 수갑채운다. 상대가 흉기를 들고 저항하면 총으로 쏜다. 그걸로 상황이 끝난다. 누구도 딴소리를 하지 않는다."
30년간 몸담았던 조직에서 물러나는 '영원한 포돌이', 김 前청장님의 퇴임사의 일부분으로 이 글을 줄인다.
앞으로도 다른 곳에서, 많은 이들이 칭찬해 마지않는 청렴하고 강직한 '인간 김석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Miscellanies > 의무경찰, 2008~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대를 한 달여 앞두고. (0) | 2010/03/28 |
|---|---|
| [EOS 500D] 따뜻한 봄날의 연합진압훈련 제2탄!(사진多,스크롤주의^-^) (0) | 2010/03/26 |
| "그때 당신이 경찰청장이었다면?… 화염병에 선량한 시민이 죽었다면?…" (2) | 2010/03/23 |
| 추운 봄날, 경찰병원에서의 반가운 조우 :) (2) | 2010/03/22 |
| [EOS 500D] 겨울같은 봄날의 연합훈련, 그리고 즐거운 만남.(사진多, 스크롤 주의^-^) (0) | 2010/03/17 |
| 날 좋은 오후의 주간방범, 그리고 캐논 EOS 500D (2) | 2010/03/16 |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 41중대 해체...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 41중대 해체...
Posted at 2010/02/04 09:12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엊그제 느닷없이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에 속한 41중대가 해체됐다. 더 이상 매일의 서울중대 근무배치를 보여주는 경력일보에서 '41중대'라는 글자를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41중대는 의경으로 이루어진 의경 기동대로서 그동안 집회관리, 시위진압의 일선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온 정예 기동대중 하나이다. 이런 중대가 내부의 자체사고로 인해 해체됐다. 이번에 새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신 조현오 청장님께서 전임지인 경기청에서 재직하실 때도 전의경 자체사고에 민감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서울청 소속 중대가 해체되는 것을 본 것은 군생활을 하면서 처음이다.
이제는 위와 같은 4기동단 조직도에서 '41중대'란 글자가 지워진다.
일종의 '본보기'로 중대자체를 해체시켰다는데, 같은 서울하늘 아래에서 먹고자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만약 우리 중대라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전의경중대의 자체사고는 하루이틀 문제된 것이 아니다. 자체사고란 부대 내에서 터지는 온갖 내부사고를 의미하는데, 주로 구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대원이 상급기간인 해당 중대 소속 지방청에 '찌르면' 자체사고로 기록된다.
구타나 가혹행위는 전의경 중대의 전통처럼 예전부터 많이 있어왔는데, 보통 쉬쉬하면서 중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상급기관에 자체사고 사실이 알려지면 대외적인 부대 이미지 손상과 평가절하, 기간요원의 문책, 최악의 경우 이번처럼 부대를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체사고의 여파는 실로 엄청나다. 소속 지방청에서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한 감찰이 파견되고, 그 중대는 '자체사고 중대'로 기록되며 일종의 낙인이 찍힌다. 해당 부대는 그 후에도 알게 모르게 갖가지 불이익을 받고, 부대 지휘관들에게 대원관리의 책임을 물어 엄중문책한다. 당연히 대원들 간의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모두가 함께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피해자의 경우에는 원하는 다른 중대로 재배치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해자 또한 다른 중대로 재배치 받는 경우가 많다. 보통 우리들은 이런 것을 '날라간다'라고 표현한다. 굳이 표준어로 하자면 '날아간다'이겠지만..표현의 예시, "이번에 XX방순대에서 고참 찌른 새끼 하나 날라온대."
위와 같은 가해, 피해대원처리와 별개로 지방청에서 자체사고에 대한 후속조치로 행하는 부대해체는 실로 끔찍한 일이다. 어느 인간이나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그런 소속집단이 한 순간에 공중분해되어 매일 가족처럼 먹고자는 부대원 전부가 이산가족처럼 흩어진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 중대를 전역한 이로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좋거나, 싫거나 내가 전역한, 내 이름이 2년간 어딘가에 붙어있었던 부대인 것이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의 경우, 중대해체는 비일비재하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의경을 활용한 치안수요가 적은 지방은 상급기관에서 자체사고를 이유삼아 해당 중대를 가차없이 하나둘씩 없애고 있는 것이다. 전의경인력감축이라는 큰 틀안에서도 이런 조치는 정당화될 수 있다. 서울청은 전의경치안수요가 많은 관계로 중대해체라는 극약처방은 오랫동안 없었던 편인데, 이번 41중대해체는 그런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속한 중대도 이런 자체사고의 파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대배치 받기 바로 전에 당시 하급기수 대원이 자신을 괴롭히던 상급기수를 서울청에 '찌른' 것이다. 중대해체까진 안갔지만 위에 열거한 후폭풍 때문에 모두가 많이들 힘들어했더랬다.
지금은 21세기, 2010년이지만 아직도 병영문화는 시대를 뒷걸음질하는 전의경 부대가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고참이 되어보니 그런 병영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자체사고가 꼭 '악질 고참대원'때문만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군생활을 보이스카웃으로 착각하는 신병이 많아지는 것도, 조금만 윽박질러도 그것을 가혹행위로 치부해버리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분석을 떠나서 부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군인으로서, 자신의 부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난 경찰 지휘부가 이런 '파격적인 해결방법'은 앞으로는 좀 지양했으면 좋겠다. 다른 여러방법으로 전의경 자체사고 근절에 힘써줬으면 어떨까 싶다.
'41중대'라는 부대이름 아래에서 만든 수 많은 부대생활의 추억을 등지고 남은 군생활을 해야하는, 혹은 했던 동료대원들과 전역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41중대 해체의 원인이 된 자체사고는 구타사고였음이 확인됐고, 복수의 가해대원은 중징계 및 형사고발됐다. 피해대원은 6~7일짜리 청장특박을 받고, 다른 중대로 전출갔고, 해당 지휘관들 또한 중징계를 받았다.
서울청장님께서는 앞으로도 자체사고에 대해 중대해체와 같은 파격조치를 취할 것임을 이를 통해 본보기로 보여주셨다.
현재 직원기동대 15개 중대가 있는 서울로서는 전의경 중대가 몇개 없어진다고해서 경력운용에 큰 타격을 받진 않을 것이란 지휘부의 계산이 깔려있는 조치는 아니었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Miscellanies > 의무경찰, 2008~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군에서 맞는 생일도 외롭지 않아! (2) | 2010/02/05 |
|---|---|
| 이렇게 난 악마가 되어간다. (0) | 2010/02/04 |
|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 41중대 해체... (26) | 2010/02/04 |
| 훈련의 기억들. (0) | 2010/02/03 |
| 이고그램 자아상태 분석표 (2) | 2010/01/23 |
| 전역일 관리,계산프로그램(MiliDay) (4) | 2010/01/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