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직후의 마음가짐?제대 직후의 마음가짐?

Posted at 2010/05/29 01:44 | Posted in Miscellanies/복학생, 2010~
어느덧 나도 제대한지 2주일이 훌쩍 넘었다. 머리 좀 짧은거 빼고 '군바리 스멜'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주위에 딱히 없음. 원래 난 제대 직전에 아래와 같은 것들을 꿈꿨었다.

1. 원없이 게임이나 하자!

▣ 내가 직면한 현실 : 난 일단 게임에 소질이 없고, 입대 전에도 별로 즐기지 아니함. 제대하기 6개월도 훨씬 전 부터 휴대용게임기 PSP를 장만해서 경찰버스 안과 내무실에서 껴안고 살아서인지 게임은 쳐다도보기 싫음.

2. 잠이나 자자!

▣ 내가 직면한 현실 : 부대에 있을 때, 말년에 하도 시간이 안가서 잠을 한번 미친듯이 자보려고 했었는데, 시간가는건 좋았지만 이게 인간인가 짐승인가 싶어 끔찍했다. '이제는 그만 자고 싶다'고 느낄만큼 원없이 자고 나와서 제대하고 또 잠에 쩔어 살고 싶지는 않았음.

3. 여행이나 가자!

▣ 내가 직면한 현실 : 내 군생활은 그냥 '여행' 그 자체였다. 경찰버스를 타고 종로와 광화문, 여의도 등 기타 여러 집회장소를 우리집 앞마당처럼 오갔고, 방범나가서는 강남의 곳곳을 도보순찰하며 누비고 다녔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군생활을 빙자하여 내게 선물해준 '서울시티투어'가 아니고 무엇인가. 평택과 과천 을 비롯한 서울 이외 지역도 몇번 갔다오고 하니 굳이 '부대에 갇혀 살았으니 세상 밖을 탐험해야지'란 욕구가 생기진 않음.

결국 난 정말 '할게 없어서' 바리바리 책과 노트북을 싸들고 학교 도서관으로의 출퇴근을 계속하고 있다. 전역한 군인들의 원초적인 니즈를 군생활 속에서 모두 충족시켜줬기 때문에 전역했을 때 다른 잡생각을 안하게 해준 대한민국 경찰, 행정안전부에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난 겉보기엔 열심히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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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하겠다며 깝죽대는 이유내가 공부를 하겠다며 깝죽대는 이유

Posted at 2010/05/16 21:02 | Posted in Miscellanies/복학생, 2010~
제대하자마자 하루종일 학교도서관에 있다가 출퇴근하기를 반복하자니 기분이 좀 그렇다. 원래 기분같아서는 여행도 가고, 이거저거 많이 하려고 했지만 제대휴가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직면한 현실의 높은 벽을 보았다. 결국 난 공부를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히 도서관을 오가고 있다.

진지하게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해봤고, 내가 잘 하는게 무엇인지도 생각해봤다. 글쎄...아직 내가 날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노래로 돈을 벌 수 있을만큼 노래를 잘 하지도 못하고, 연예인이 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만큼 끼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세상을 휘어잡을 수 있는 음악적 재능도 없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주 비상하지도 않다.

결국 내가 이 날 이 때 까지 해온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엉덩이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부밖에 없다. 겨우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가지고 어디가서 '난 공부했다.'라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정도의 비교를 떠나서 나라는 인간이 가진 재능의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내게는 공부밖에 길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바로 경제학에서 다뤄지는 '비교우위' 개념과 약간은 뜻이 통하는 선택이 아닐까. 나의 그 어떤 것도 세상에 널리고 널린 특출난 사람들에 비해 절대적 우위를 갖진 못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재능(?)'중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공부 밖에 없다는 것.

학교 중앙도서관에는 이상하게 이런 '비수기'에도 사람이 꽤나 많다. 나처럼 칙칙한 고학번도 많이 눈에 띄지만, 딱 봐도 앳되어 보이는 1학년들이 더러 보인다. 좀 안타까운 측면도 있다. '그 때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공부가 아닌 많은 것들이, 해야 할 경험이 산재해있는데 무엇이 이들을 칙칙한 도서관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인가.

날이 가면 갈 수록 화창해지고, 친구들의 유혹은 시작되었다. 나도 나를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웃기는 행태(?)는 얼마 가지 못할 것이란 것을. 그래도 도가 지나치게 나태해졌을 때, 이 글을 보면서 전역 직후의 내 생각과 마음가짐을 상기시키기 위해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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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전역, 그리고 새로운 출발!영광스러운 전역, 그리고 새로운 출발!

Posted at 2010/05/12 15:03 | Posted in Miscellanies/복학생, 2010~


아침 8시, 단잠에서 깨어나 잘 먹지도 않던 아침짬밥을 먹으러 취사반으로 내려갔다. 평소와는 다르게 꿀맛이었다. '마지막 짬밥 맛있게 드십쇼!'라고 웃으며 말을 거는 취사반 후임이 고마워서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단화를 질질 끌며 내무실로 다시 올라가서 이제 더이상은 입을 일이 없을 경찰근무복을 마지막으로 차려입었다. 여섯명의 부대동기가 함께 모여 경비계로 향했다.

제대휴가 나오는 날까지 두발상태가 불량하다며 휴가증을 안주고 애먹였던 전경관리반장님도 오늘은 말없이 수고했다며 전역증과 자그마한 전역 선물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셨다. 그렇게 싫어했던 경비과장님께서도 밖에 가서도 하는 일 모두 다 잘 되고 건강하길 빈다며 한 명씩 악수로 전역을 축하, 격려해주셨다.

눈물의 전역증 :)


아, 난 왜 눈물이 이리 많은걸까.
밖으로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전역증을 손에 쥐며 자세히 보자마자 마음 속에선 갑자기 울컥했다. 저 조그마한 증서 하나를 얻기 위해 지난 2년간 내가 겪은 여러 고통과 눈물의 시간, 기쁨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2년 전 이맘 때, 내 마음은 혼돈 그 자체였다. 광우병 미국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로 서울시내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의경들은 근근히 시위대와 대치하며 중간에서 온갖 생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시국에 서울에서 의경생활을 하겠다며 자원입대하려는 나를 불효자라고 하셨고, 결국 내 고집을 꺾진 못한채 논산육군훈련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을 꼭 잡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을 뿐이셨다.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큰 불효를 행했다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지금도 참 죄송스럽지만, 어쨌든 난 이렇게 다치지 않고 몸 건강히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

자대배치 1주일 전에 의경기본훈련을 받는 서울지방경찰청 신병교육대에서는 우리를 훈련하는데 전념해야 할 조교들마저 시위진압에 동원되어야 한다며 저녁 때 간간히 서울시내 어딘가로 달려나가곤 했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늘이 도왔던 것인지 2008년 8월 초인 그 때는 시위가 한풀 꺾여 진정국면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렇게 난 서울중대에서의 의경생활을 시작했다. 관내 방범근무를 나가서 의경 예비역이라는 아버지뻘 아저씨들한테 용돈도 몇번 받아봤고, 아들이 전경이라는 아주머니께서 먹을 것을 사주기도 하셨다. 크고 작은 시위현장에 서면 난 언제나 '전경 개새끼'였지만, 적어도 방범근무, 교통근무를 할 때는 민생치안에 일조하는 자랑스러운 군인이고 의경이였다.

2009년이 밝자 내 군생활의 1/2가량을 채운 빅이벤트가 찾아왔나니- 이름하야 '용산참사'. 추운겨울에는 집회가 뜸해서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두꺼운 완전진압복을 껴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광화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제2의 촛불집회'서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거기까진 가지 않았고, 보통 용산 안에서 힘든 근무로 근 1년이 좀 안되는 시간동안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항상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용산참사의 여파로 실컷 고생하던 와중에 있던 촛불집회 1주년 기념 대규모 집회, 김대중 前 대통령,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남을 빅이벤트의 한가운데에도 나는 있었다. 방패를 들고 광화문 곳곳을 날아다니며 노무현 前 대통령님의 운구행렬을 바로 뒤에 등지고 있기도 했다. 정말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앞에 있던 시민은 내게 욕을 하기도 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서서 명령받은대로 로보트 마냥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예인 구경도 실컷했다. 소녀시대, 카라 등 굳이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할 아이돌 연예인들을 경호, 혼잡경비 한답시고 바로 옆에서 실컷 봤고, 강남에 위치한 우리 경찰서의 특성 때문에 관내에서 심야음주단속을 하며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의 음주측정을 하다가 속으로 신기해하던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365일 늘 있는 자잘자잘한 소규모 집회에서 가지지 못한 자의 한맺힌 절규를 들었고, 가진 자의 횡포도 보았다. 난 군생활을 하며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싸움을 그들의 전쟁터에서 직접 경험했다. 보통 나는 가진 자의 편에서 약자들을 막아냈지만, 이런 경험은 내가 의경이 아니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고참들의 갈굼 속에서 '확 뛰어내릴까' 싶었던 적도 많았고, 내가 겪은 설움을 겪지 않게 하려고 후임들을 혼내다가도 친동생처럼 토닥여주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난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대휴가 복귀일 밤, 소대원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다음 날 제대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명씩 했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게 '그동안 봐왔던 고참 중에 최고'였다며, '조금만 함께 더 하자'며 울먹이는 몇몇 후임들을, 이젠 동생인 그들을 보는데 아쉬움과 미안함, 고마움의 감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어쨌든, 난 길고긴 2년의 터널을 뚫고 세상으로 나왔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더 이상 안에서 잘 일이 없는 정든 경찰서와도 안녕- 365일 24시간 경찰서 정문을 열심히 지키는 타격대 아저씨와도 가벼운 목례를 하며 안녕-

새로 태어났다. 햇살도 나의 새출발을 축하해주는듯 그 어느 때 보다 따사로웠다. 전역증과 예비군훈련 때 신을 워커를 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와락 안았다.

이 날 이 때 까지 날 보살펴준 우리 중대의 많은 지휘관분들과 나보다 앞서 제대한 많은 고참들, 나를 옆에서 보필해준 사랑하는 후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너무나 고마웠다는 말을 다시한번 전하고 싶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 누구나 그렇듯이 난 국방의 의무를 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답했고, 이런저런 이유에서 의무경찰을 지원해 자원입대했다. 후회한 적도 많았지만, 난 내게 맡겨진 임무를 그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지금까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잘 보살펴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나라를 보다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회 때문에 우리부대는 출동을 나갔다. 이상하게 밖에 나오니 주위에 지나다니는 경찰버스만 보면 계속 중대명을 보게 되고 애틋한 마음에 괜한 관심을 갖게 된다. 다들 다치지 않고 나처럼 무사히 전역하길 바란다.

의무경찰은 대한민국의 내부를 수호하는 이 나라의, 경찰의 방패같은 조직이다. 개인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볼 때 차츰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무경찰'이라는 이름이 역사속에서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는 그 날까지 난 뒤에서 수 많은 의경전역자들과 함께 묵묵히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오늘 같은 시간에 각자의 부대에서 전역신고와 함께 전역증을 들고 고향으로 향했을 의무전투경찰순경 909기(행정 950기) 동기들아, 정말 수고 많았다. 다들 성공해서 훗날 사회에서 만나자!

옆집아저씨가 된 소대장님, 그리고 나의 전우, 동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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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가.마지막 휴가.

Posted at 2010/05/01 01:28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인생의 마지막 휴가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그냥 젊은 날의 마지막 휴가라고 하고 싶다. 길고긴 군복무의 끝이 보인다. 사실상의 근무를 마치고 제대휴가를 나왔다. 기분은 민간인이다. 예전과 같은 부대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아직 한두번 들어가서 잠을 더 자고 나와야하지만, 말그래도 잠만 자야할 뿐이다.

신도림역을 왔다갔다 했는데, 방범나온 의경들이 보인다. 뭐눈엔 뭐밖에 안보인다고, 어딜가나 눈에 띈다.

독일어학원을 등록했다. 고등학교 때 미친듯이 배운 이 언어에 대한 알 수 없는 애착이라고나 할까. 실상 쓸일은 거의 없지만, 왠지 '나 독어 좀 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격증을 하나 갖고 싶었다. ZD.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겠다.

노트북이 생기니 데스크탑에 전혀 손이 가지 않는다. 진정한 유비쿼터스 라이프를 향해 다가간 느낌이다.

내가 정말 지난 2년간 뺑이친 군바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전혀 아직 군인인 내 신분에 대한 자각이 없다. 이렇게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리라곤 생각안했는데...

어제 천안함 장병들의 장례식을 TV로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눈물다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그 숭고한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길게 봤을 때, 나 스스로가 부단한 자기계발 노력을 통해 사회, 경제의 국력증강에 일조하여 내,외부의 적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절실히 느꼈다.

내가 숨을 쉬는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내일이기에.
전역 후에는 되도록 시간낭비를 줄이고 내 할일을 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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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를 한 달여 앞두고.제대를 한 달여 앞두고.

Posted at 2010/03/28 11:23 | Posted in Miscellanies/의무경찰, 2008~2010
이젠 전국적으로 고참이 없다. 7주 차기수인 의경 908기(행정기수 949기)가 엊그제 완전 전역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입대 전에 기동본부에서 면접을 볼 때, 자신이 원하는 입대일을 순서대로 고르라고 했었다. 난 5/1, 5/8, 6/26 순으로 가장 빠른 시일부터 지망했으나 연장자우선 때문에 밀리는 바람에 6/26에 입대했다. 5/1입대한 기수가 907기, 5/8입대가 908기, 6/26 입대가 지금 내 기수인 909기이다.

운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나도 지금쯤 제대했을텐데.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말이 많다. 나와 전역일이 비슷한 말년병장의 실종소식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하루하루 더 조심스럽게 생활해야겠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도 을호비상령이 떨어져서 영외활동이 전면금지됐다.

대한민국은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 입대한 국군장병들과 우리 전의경들이 그들의 선택이자 의무를 훗날 후회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다. 실종자 가족이 남같지 않다는 나의 부모님과 실종된 당사자들, 그리고 각자의 부대에서 숨죽이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수 많은 이 땅의 군인들을 생각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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