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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회사원, 2014~

우리는 '완전한 고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책 '마션'을 읽고.


#1. 


기다리던 토요일- 직장인은 누구나 기다리는 토요일이겠지만 어제였던 지난 토요일은 왠지 더 간절하게 기다렸다. 금요일을 회사에서 불태웠기 때문이다. 서울 본사에 있을 때처럼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연말정산과 1월 회계결산 등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에 온종일 시끄럽게 울리는 내선전화와 사내메신저 대화창, 보기만해도 징그러운 서류더미에 시달렸다. 진정한 본게임은 월요일인 내일부터이기에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어쨌거나 기다리던 토요일이 되었는데 나란 인간은 한치의 예상에도 벗어나지 않고 무기력하게 원룸의 침대위를 가수면 상태로 뒹굴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면 안돼'라는 마음의 울림이 전해지며 쳐다본 책상쪽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마션'. 영화 오렌지카운티에서 해변가 모래사장에 있던 책이 'READ ME~'라고 주인공에게 속삭이던 것과 비슷한 상황. 몇달전에 서울 집에 올라갔다가 동생이 다 읽었다길래 무심코 가지고 왔는데, 활자공포증이라도 걸린 것 마냥 지금까지 건드리지도 않았던 책이다. 왠지 이번 주말은 이 책을 한 권 읽으면 뿌듯해질 것 같아서 무심코 스타벅스에 가져가서 읽기 시작했다.


#2.


영화 '마션(The Martian)'은 영화관에서 무려 두번이나 봤다. 너무나 재미나서 두번 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최근에는 핸드폰으로 다운받아서도 두번을 봤다. 내가 좋아하는 화려한 액션도, 두 손을 꼭 쥐게 하는 스릴러적 요소도, 뒷통수를 얼럴하게 만드는 반전도 없는 영화인데 무엇인지 모를 매력이 있었다.

'마션'과 비교선상에 올릴 수 있는 최근 개봉 헐리웃 영화로는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 정도가 있다. 어릴적부터 '우주'라면 사족을 못쓰던 나이기에 나머지 두 편 역시 영화관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했다. 인터스텔라는 막판에 SF적 요소가 너무 판타지처럼 변해버려서 아쉬웠고, 그래비티는 나름의 큰 울림이 있었으나 마션처럼 여러번 다시 보지는 않았다.

'영화보다 책이 더 재미있다'는 동생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책장을 펼쳤고, 책 속의 인물들은 어느새 영화속 배우들과 완전히 겹쳐지며 내 머릿속에서 영화를 다시 찍기 시작했다. 실제 영화도 꽤 러닝타임이 긴 편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영화와 조금씩 다른 부분 및 아예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꽤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을 거의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려면 미드처럼 여러 편으로 만들어야 모두 담아낼 수 있을 법한데,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 완전히 몰입해서 혼자서 피식피식 웃던게 여러번인데, 아마 이 모습을 커피샵에 있던 다른 이가 봤으면 좀 웃겼을 것 같다. 마지막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다시 헤르메스 호에 귀환하고, 그를 구조하기 위해 조직과 국가의 이해관계를 모두 잠시 제쳐두고 도운 뜨거운 인류애를 재조명하며 책은 막을 내렸다. 책에는 '문과충'인 나의 수준에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우주 속의 여러 '이과스러운' 상황과 해결과정이 나오는데, 이걸 모두 이해하면서 책장을 덮었다면 거짓말이다. 어쨌거나, 책장을 덮으며 몰려오는 긴 여운의 끝에는 한 가지 화두가 던져졌다. 그것은 바로 '고독'.


#3. 




책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홀로 남겨져서 진정한 고독을 경험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 방문을 닫고 홀로 처박혀있거나 핸드폰을 끄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과는 다른, '완전한 고독'이다. 지구상의 우리는 편하게는 늘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으로, 핸드폰이 없으면 직접 두 발로 다가가서 또 다른 인격체를 만날 수가 있다. 제 아무리 인적이 드문 오지에 가더라도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은 60억 인류가 어디엔가 흩어져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pale blue dot, 지구별이다. 책을 읽고나서 느낀 것은 지구상에 있는 우리들은 완전한 고독을, '홀로 있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의 줄리아 로버츠도 엄청난 고독과 고요 속에 있었지만 최소한 그녀는 지구의 중력이 닿는 곳에서 이 푸른 별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육안으로는 지구가 잘 보이지도 않는 붉은 화성에서 통신마저 두절된채 외로운 생존전투를 시작해야만 했다.


#4.


영화와 책을 본 이들은 '내가 마크 와트니라면?'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번쯤 하게 될 것이다.  그가 가진 뛰어난 공학적, 식물학적 지식의 유무는 차치하고, 우리는 '홀로 있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고개를 들어 바라보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도, 가볍게 눈웃음으로나마 인사를 나눌 수 있는 타인도, 심지어는 과학적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 분명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만 같다. 마크도 치사량의 몰핀을 곁에 두고 언제든 세상을 등질 준비를 하고 고독과, 그리고 때때로 엄습하는 절망 및 포기의 순간들과 사투를 벌였다.


#5.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각자가 단어 자체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인 사회의 구성원이다. 싫거나 좋거나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종종 '공동체의 가치'가 개인의 그것보다 상위에 있음을 은근히 교육받기도 했다.(이 부분은 내가 학교에서 잘못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관계 속에서 '혼자'가 되는 것을 어려워하며, 심지어 그것을 죄악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멀리가서 찾을 필요도 없다. 바로 나부터도 이러한 사회적 프레임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교 때 난 점심시간에 공강인 친구들을 찾곤 했다. 목적은 바로 '함께' 식사하기. 혼자서 학생식당에 앉아서 밥먹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집밖에서 먹는 밥은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혼자 먹는 것을 학교의 다른 이가 보면 왠지 측은지심을 느끼며 안타까워할 것만 같았다. 군 전역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강을 맞춰서 밥을 먹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누군가와 함께 먹으려고 했지만 간혹 그 시도가 실패하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중앙도서관에서 회계사 수험생활을 시작한 후 배고픔을 참다못해 처음으로 혼자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결국 체했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 때는 그랬다.


#6.


21세기인 지금, 타인과의 소통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쉬워졌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내가 지금 열심히 기록하는 이 블로그도 모두 문명의 발전이 만들어낸 소통의 플랫폼이다. 쉴새없이 울려대는 SNS 어플의 알람소리를 들으며 종종 의미없는 댓글과 인사를 주고받고, 타인의 생각과 삶을 들여다보는 이가 많은 세상이다. 얼굴본지는 몇년이 되었어도 SNS에서 함께 온라인이면 둘의 관계가 여전히 'ON'이라고 믿는 이도 많은 세상. 나 역시도 싸이월드를 비롯해서 페이스북에 열심히 영양가없는 똥글과 사진을 양산하며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고, 의미없는 댓글을 나누며 그 소속감 속에서 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둘다 손 놓은지 오래지만, 한창 열심히 할 때는 글자 하나에서 비롯된 오해로 인해 오히려 실제 관계에 금이 간 경우도 있었다.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적 요소가 더 많이 내재되어 있다고 뒤늦게 결론 내리고 지금은 그냥 계정만 지우지 않은 상태이다. 관계 속에서 소속감과 자존감을 느끼려고 시작한 소통이 오히려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소통을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쉬어진 소통만큼 글과 사진만 보고 너무나 성급하게 서로가 서로를 결론내리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7.


난 어릴 때 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풀밭에 누워서 뭉게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몇시간이고 가만히 있기도 하고, 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다가 검붉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음악듣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이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됐든 난 나름대로 '고독'을 굉장히 즐긴다고 생각하면서도 밖에서 혼자 밥먹으면 소화가 안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었다.


#8.


좁은 반도에 5천만이 넘는 인구가 대도시, 수도권 주변에 밀집해서 살아가는데 타인과의 관계 및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두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인격체로서 보다 더 성숙해지고, 보다 더 인간다운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어느 누군가가 이것을 방해한다기 보다는 우리들 스스로가 홀로있음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애써 그 관계의 끈을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에 자연스레 포기하는 측면이 크다고도 할 수 있다. SNS의 친구 및 팔로워 수가 자신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가치의 정량화된 숫자라고 믿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소통 아닌 소통'을 할 수록 진정한 자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박탈된다고 생각한다.


#9.


결국, 성숙한 자아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히키코모리처럼 이 사회를 완전히 등지고 지구를 '자신만의 화성'으로 만드는 것도, SNS에 자신이 지배하는 왕국을 만들거나 타인과의 관계 및 시선을 항상 의식하며 24시간을 보내는 것도 결코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니리라. 거짓소통이 아닌 '진짜 소통'이 필요하다. 때로는 이 '진짜 소통'도 없는 고독과 고요의 시간이 종종 필요하다. 

물론, 나는 지방근무를 핑계로 이 '고독과 고요'에 경도된 삶을 살고 있으니 '진짜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넌 도통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없다."며 자주 힐난하는 친한 친구에게 괜한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10.


마크 와트니는 화성이라는 외로운 행성에서 유일한 지적생명체인 자신과 '無'에 가까운 외부 상황을 차차 받아들이고 자신이 화성을 정복했다고 농담까지 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타인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은 진정 '자기자신'이라는 별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책, 그리고 영화 '마션'은 나에게 화성 혹은 오지에서 생존하는 법이 아닌, '지구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질 수 있는 고독의 의미'라는 화두를 던져줬다.

왠지 오늘 밤 꿈속에서는 맷 데이먼 얼굴을 한 마크 와트니와 함께 붉은 행성 한 켠에 배열된 태양전지판 위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을 것 같다.



"Are you ready to be alone?"

"우리는 혼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