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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는 언제쯤에나 갈 수 있으려나 여느 때와 같이 시황 메일을 뿌렸는데, 옆팀에 있는 형이 갑자기 '너 휴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봐서 바로 전산을 조회해봤다. 아뿔싸,, 3분기가 끝나가는데 20일 남았다. 나 휴가 언제 가요.... 맨날 회사에 코로나 밀접접촉자/확진자 나왔다고, 검사하라고 해서 코만 뚫고ㅠㅠ 어제도 또 뚫고...ㅠ_ㅠ "마음 편히" 좀 쉬어보고 싶다. 마/음/편/히 2021. 9. 14.
잔인한 8월, 아직까지는 잔인한 2021년 10년여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언제나 생각이 많을 때는 서강대교 위에 오른다. 한강 건너 여의도에서 보이는 회사 로고가 '너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고 날 비웃는 것만 같고, 10년의 세월이 돌고 돌아서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와중에 갑작스레 시원해진 밤 공기는 가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고, 나의 서른다섯도 속절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대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들이 내 앞에 기다리길래 이렇게 힘든 2021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한 주간은 입사 이래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잔뜩 쌓여있는, 답도 없는 일들과 거의 매일 야근하며 외롭게 싸워야했다. 그렇게 혼자 사무실의 불을 여러날 밝혀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들이.. 2021. 8. 29.
8/18(수) 장중 소고 (병주고 약주는 그 하우스...) 근래에 급등한 달러/원 환율이 여러모로 괴롭게 하고 있다. 1. 대체 환율이 왜 이럼? 2. 언제까지 이럼? 3. 그래서 분기말/연말 환율은 얼마될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의미없는 질문 같..) 전주에 종가기준 26.9원 급등이라는 무시무시한 레벨 업을 보여준 이후 이에 대한 원인/향후 전망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왠지 USD/KRW 일봉 차트를 한번 보고 가야할 것 같다. 어제 1,180원 구경하나 싶었는데, 여차저차 막아냈고, 오늘은 지존하신 '당국'에서 구두 개입에 나서자 살얼음이 깨지듯이 오전 장중에 갑자기 하방으로 방향을 틀어서 흐르고 있다. 장 초에 간밤 달러화 강세에 상승세로 시작한 환율은 1,180원을 0.30원 앞두고 치솟았으나 다행히도 방향을 틀었다. 고아원 가기 전에 .. 2021. 8. 18.
가을아, 어서 오라. 성당에서 이제 다시 대면 미사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기존보다 더 엄격해진 인원 제한이 적용되었긴 하지만 더 이상 유튜브로 평화방송을 보며 어색하게 비대면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보다 엄격해진 인원 제한 때문에 고령의 신자들이 낮 시간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젊은 신자들은 되도록 새벽미사인 6시를 이용해달라는 공지가 있어서 오늘도 알람 시계와 잠시나마 싸우며 5시 20분에 기상했다. 그래도 원래 밤잠이 없는 편인데다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5시 50분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후 시계에 표시된 기온을 보니 섭씨 21도. 슬슬 가을의 그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입추가 지나긴 했는데, 아직 8월 중순이어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라고.. 2021. 8. 16.
7/30(금) 장중 소고 (이 곳이 중국인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화와 위안화는 여러가지 이유로 비슷한 흐름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오늘 들어 이런 모습이 더 두드러진다. 두 통화간의 코릴레이션을 금융기관의 리서치센터처럼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오늘은 거래를 하며 장중 틱 차트를 멍하니 보고있는데 움직임이 너무 유사해서 괜히 소름이 돋았다. 원화가 위안화의 프록시 통화니 뭐니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연동된다고는 하지만,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그냥 중국과 붙어있는 또다른 중국으로 간주되는게 아닐까란 불편함이 있다. 물론, 이건 정치적인 논리가 아닌 양국의 밀접한 경제적 상관관계 때문인 것이 크겠지만 이런 다소 미시적인 움직임 마저 똑같이 판박이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해야하나. 중간에 달러를 거치지 않고 위안화와 원화간.. 2021. 7. 30.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오랜만에 회사 업무 관련 스트레스에서 조금은 해방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지리멸렬한 야근과 고통스런 숫자/회계 분개 싸움으로 수명이 매일 조금씩 줄어드는게 느껴지다가도 당장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조직에서 나 밖에 없다는 책임감으로 버티고 또 버틴다. 2주일 전에 드디어 만 7년을 꽉 채우고 8년차 회사원이 되었다. 조금씩 잠잠해지는듯 했던 코로나19 상황은 다시 전례없이 격해지고 있고, 나의 조직생활, 환율, 그 외 많은 것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백신도 맞았고, 이제는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는구나 싶다가 갑자기 급변한 상황은 이래저래 씁쓸함만 더 할뿐이다. 특별한 사교활동도 하지 않고, 집-회사 만 오가는 일상 속에서 다른 옵션을 고민해보기도 하고, 그간 잠시 소홀했던 혼자만의 취미활동.. 2021. 7. 18.
끝은 새로운 시작-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모든 것이 갑작스럽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여러모로 참 안좋은 시기. '왜 갑자기 지금?'이란 물음표가 뇌리에서 떠나지는 않지만, 또 묵묵히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우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서, 어미의 배를 박차고 나오는 그 직후부터 고통의 연속이다. 희노애락의 구성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항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드님이 듬직해서 너무 부러워요." 라고 립서비스를 날린 보험판매인 아주머니를 언급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날 많이 보고싶어 하시는 건 잘 알지만, 독립해서 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꿋꿋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2021. 6. 7.
나는 쉬이 이 회사를 떠날 수 없다. 회사에서 알게 되었지만 업무와 관련없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나의 사적인 이야기, 고민, 금융시장 동향과 전망, 우리의 미래, 산업의 미래 그리고 회사의 미래- 수 많은 주제에 대해 굳이 술병을 앞에 두지 않고도 진지하게 때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비슷한 또래들이 다같이 대리~과장 직급이다보니 꼭 입사 동기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입사 전에 학교에서 만났더라면 선후배 사이로 더 끈적한 정을 쌓았을 것 같은 고마운 사람들. 몇년 전에는 미리 말하지 않았던 내 디제잉 공연에도 가족처럼 찾아와서 응원해준 사람들- 한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 2021. 6. 4.
책임의 무게, 무게의 책임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 그 누구도 나를 등떠밀지 않았고, 오롯이 나의 의사로 행한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있다. 스무살 성인이 된 이후 암묵적으로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으며, 직장인이 된 후에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져야 할 책임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선택 그리고 자유와 방종의 애매한 경계 속에서 우리네 삶, 특히 나의 현재 삶에는 수 많은 선택이 존재했다. go or no-go. 가끔은 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잘 하지는 않지만 어떤 게임 속에서는 rewind 기능이 존재해서 잠시 뒤로 감은 다음 다시 플레이할 수 있는데, 우리의 삶은 비가역적이다. 다시는 그 선택의 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채기는.. 2021. 6. 2.
2021년 인생의 쉼표, 근황/생각 정리 요 며칠 드라마틱한 일이 많이 있었다. 거의 매일 올리는 금융시장 시황 글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오랜만에 남기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찌됐든 이 블로그는 2006년부터 이어져 온 내 인생의 기록이고 종합장이다. #1.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를 회사에 입사하던 해인 2014년에 떠나보내고, 2021년 4월 11일 남아계시던 할머니 마저 눈을 감으셨다. 공교롭게도 내 생일날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고마운 축하 인사를 받던 와중에 갑자기 집에서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니 스탠바이하라"란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멍 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는 89세라는 연세에 노환으로 영원히 떠나셨다. 할머니께서 공식적으로 세상을 떠나신 일시는 4월 11일 오후 4시 11분이었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2021. 4. 22.
화요일 아침의 가을 하늘은 공활한데. 아침 6시 20분. 이젠 듣기 싫지도, 좋지도 않은 모닝콜 소리에 눈꺼풀이 열렸다. 일순간 차디찬 한기가 느껴진다. 맞은편 벽의 보일러 스위치에 내장된 디지털 온도계는 섭씨 21도를 가리키고 있다. 쥐톨만한 숫자가 멀리서도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걸 보니 나의 라섹수술은 아직까진 대성공이다. 그나저나 엊그제까지만 해도 분명 25~6도 였는데. 갑자기 드라마 Game of Thrones에서 "Winter is coming."이라고 나지막히 말하던 Jon Snow의 육성대사가 떠오른다. 현실과 드라마 세트장을 넘나드는 몽롱함이 잠시간 계속되는 가운데 머리맡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악소리. 고막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소프트한 비트와 멜로디 라인, 반복되는 가사. And I'm leaving you all.. 2020. 10. 6.
광복절, 그리고 (나의) 독립선언문 언젠가부터 갈구했던 독립을 드디어 쟁취했다. 서른넷이 되어서야 독립 '쟁취'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사실 많이 부끄럽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한달 전 즈음 회사 후배 민수와의 충동적인 복덕방 투어로 시작했던 독립 추진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의 이전 자취 경험은 정확히 10년 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간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패기 넘치게 전역한 후, 회계사 시험준비를 하겠답시고 학교 앞인 신촌역 근처에 자취방을 잡았다. 모든 것은 부모님의 따사로운 경제적 은총 속에서 등골브레이커 모드로 진행되었고, 시험을 접고 현재의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2014년까지 약 4년 동안 20대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본가로 돌아갔다. 나와 아버지의 통근을 고려하여 일부러 1호선 라인으로 이사까.. 2020.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