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살 막바지의 나를 박제하다.
6개월 정도만 지나면 회사생활 9년차가 되고, 나중에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해인 2021년 또한 곧 마침표를 찍게 된다. 땀에 온 몸이 흠뻑 젖은 채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7시 5분에 인포맥스 모니터를 켜고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영하의 날씨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난 올해 참 열심히 살았다. 잘 살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열심히 살았노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때 변변한 증명사진도 제대로 없이 학교에서 찍은 졸업사진으로 갈음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입사 후에 치른 모든 자격증 시험 및 회사 그룹웨어에 나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쓰였고, 그렇게 거의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지금과 너무 다르다며 면박을 준 회사 동료들은 없었지만, 올해가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해이기도 해서 사진을 교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보니 이 시국에 유료 독서모임의 모임장이 되어서 해당 사이트에 게시될 사진이 필요하기도 했다.
올해 소개팅(절/대/맞/선/아/님)을 진짜 역대급으로 많이 했는데, 따로 일상 사진이 별로 없다보니 주선왕인 형이 "넌 제발 사진 좀 찍어라."라고 종종 핀잔을 주기도 했다. 물론, 그가 언급한 사진이 보정이 잔뜩 들어간 증명사진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어울리는 투박한 사내놈들끼리는 서로 오글거리는 일상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그런걸로 우애를 다지기에 우린 너무 늙어버렸기도 했고, 사진 속 늙어버린 우리의 모습이 이제 피차 마음에 들지 않는 시점이 되어버렸다.
애매하게 눈발이 날리는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위와 같은 온갖 이유를 다 갖다붙여서 향후 몇년동안 나를 대표할 증명사진을 촬영했다. 스튜디오에서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알아서 보정까지 해서 파일을 줬는데, 조금 과한듯 싶다. 사진을 받아본 나의 모친 독산동 신여사님은 "실물과 똑같은데?"라며 묻지마 고슴도치표 코멘트를 카톡으로 날리셔서 피식했다.
사진만 놓고보면 이상하게 8년만에 회춘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워낙 2013년에 찍은 사진의 해상도가 형편없기도 하지만.
뜬금없는 증명사진 촬영 소식에 '대놓고 이직을 준비하냐'고 물어보는 회사 동료들이 많았다. 그들도 내가 이 회사를 떠나고 싶을만큼 힘든 한 해를 보냈다는 걸 알아서일까.
큰 마음 먹고 새로 찍은 증명사진 속 나의 옅은 미소처럼 2022년에는 미소 지을 일이 올해보다는 많았으면 좋겠다.
며칠 후에 30대 후반에 진입하는 서른다섯의 12월 24일, 내 모습을 박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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