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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서울에 복무하는 전의경은 우울하다.

by hyperblue 2009.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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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와 관련해서 경찰조직 내에 큰 파란이 일고, 그 폭풍의 결과로 김석기 前청장이 물러났다. 공석으로 남아있던 서울청장 자리에 한 마리의 용(龍)이 등장하셨나니....바로 주상용 치안정감이다.(치안정감은 경찰 내 두번째 계급. 말 그대로 경찰 No.2)

계급장에 큰 무궁화3개를 달고 서울치안유지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경찰조직의 가장 말단인 우리 전의경들에겐 역시 화젯거리가 되었다. "대체 어떤사람이래? 우리한테 잘 해줄까?" 청장의 말 한마디에 군생활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기대와 불안이 오가는 시기가 지나고 그가 자리를 잡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대는 사라지고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엔 단순한 불안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두들 입에 "좆됐다."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전임청장들의 약속을 거의 다('모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듯.) 무효화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 아직 용산사건이 터지지 않았을 때인 작년 말 공문 하나가 일선 중대로 다 내려왔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너희들 고생하는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몇가지 약속을 할게. 1. 분기별 특박(특별외박)의 정례화 2. '전의경의 날' 제정 3. 일과 휴식을 확실히 구분...." 지휘관이 읽는 공문을 듣는 우리 대원들은 약간은 반신반의했지만, '드디어 더 좋아지는구나'란 식의 기대감에 다들 부풀어있었다.

당연히 위와같이 되겠거니..하던 시점에 뻥!터져버린 용산참사. 경찰관 1명이 죽고, 시위대 여럿이 죽었다. 죽은 시위대는 역시나 '열사'가 되었고, 공무집행 중에 죽은 경찰관은 '개죽음'을 당한 꼴이 되어버렸다. 시위대는 들고 일어났고, 그 여파로 통상적 시위시즌도 아닌 연초부터 서울에 복무하는 전의경들은 예기치 않은 고생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현재 진행중.

죽은 시위대의 주검이 안치된 용산 순천향대병원에는 전의경중대가 계속 번갈아가며 아직까지도 수사지원을 하고 있으며, 증거보존 등의 용도로 아직 뚜렷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참사현장도 전의경들이 계속 지키고 있다. 폐허가 된 그 곳에서 새벽에 서있을 때, 주변을 돌아다니는 전철연 등의 단체들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 가운데 취임한 주청장은 그 은혜로운 손길을 말단의 우리들에게 직접 뻗으셨다. 일단 그는 전임청장들의 약속을 모두 백지화했다. 가족친지와 친구들에게 전임청장들의 공약을 자랑하며 '요즘 전의경제도가 더 좋아지고 있다'고 한 대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물론, 주청장은 나름의 방법으로 기업의 '성과급제도'같은 것을 도입한다고 했지만, 그것을 오히려 더 압박으로 느끼는 대원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여러가지 불만사항과 문제가 있지만, 경찰 내부의 사안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 포스팅엔 생략하겠다.

이렇게 복무중인 전의경들 사이엔 불만이 치솟고 있는데, 지난 해 촛불집회의 여파로 계속 급감하고 있는 전의경지원자들을 경찰수뇌부는 대체 어떻게 끌어오겠다는 것일까.

일선에서 일하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전의경 제도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 우리가 맡는 그 dirty job을 직원들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국방의 의무'라는 말아래 우리는 묵묵히 행하는 그 일을 봉급을 받는 직원들이 다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경찰조직에 그걸 감당할 예산조차 없다. 전국의 전의경 수는 약5만에 이른다. 그 사이사이엔 소위 '개땡보'라고 칭하는 '잉여인력'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찰의 경비업무와 생활치안 업무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보다 나은 복지시스템으로 지원자를 유혹하기에도 모자라 현재 복무중인 사람들마저 지치게 해버리면 어쩌자는걸까.

군인은 그냥 군인이지. "까라면 까'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왜? 군인이니깐.
그래도 의경은 지원을 해서 입대를 하는 시스템이다. 전경처럼 육군훈련소에서 랜덤으로 차출하지 않는 이상 '유혹받은 지원자'가 많이 필요하다. 경찰은 이런면을 충분히 고려해서 전의경 사기진작에 나름의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불철주야 서울의 곳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현역 전의경들에게 더이상 '채찍'이 아닌 '당근'이 때때로 주어졌으면 한다.

주청장님! 우리들을 부디 어여삐 여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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