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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수험생, 2010~2012

정치적인 신부님때문에 불편한 미사시간

by hyperblue 2010. 5. 30.

난 천주교 신자다. 아무한테나 떳떳하게 '난 가톨릭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마음과 행동이 신실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릴적부터 꾸준히 다녀왔고 군생활 중에도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내가 죽을 때 까지 함께 해야 할 종교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제대 후에 새롭게 나의 본당이 된 동네 성당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신부님이 '너무 정치적'이여서이다.

나는 기도를 하러,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과 대화를 하러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지 신부님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들으려고, 어떤 의미에서는 강요받으려고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신부님도 그걸 알법한데 우리 성당 신부님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워낙 확고해서인지 강론시간을 '주님의 가르침'을 빙자해서 은근슬쩍 '정치, 시사얘기'로 채우는 경우가 좀 많은 것 같다.

솔직히 거북하다. 신부님은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아니올시다'이다.

"천안함 사건, 그거 뚜렷한 증거도 없는데 정말 북한이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4대강 미친 삽질은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제가 누구 찍으라고는 안할게요. 선거법 위반이니깐요. 알아서들 하실꺼라 믿습니다."
 
등등 이처럼 자신과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포용하지 않는 정치적 색깔이 농후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오늘 미사 강론시간에도 어김없이, "생명의 날을 맞이하여 4대강 관련 영상을 짧게 보겠습니다. 보기 싫으신 분은 나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자 한 중년 부부가 보란듯이 미사 도중에 용감하게 자리를 떠났다. 나도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도 나갈까요?"라고 말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참았다.

그래, 4대강 사업은 엄밀히 말하면 자연파괴이고, 생명과 자연의 보전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종교단체에겐 자연에 대한 죄악이 될 수도 있다는 데는 전혀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개발에 따른 득과 실, 그리고 정치노선에 따라 호불호의 선택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런 사안을 너무나 대놓고,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냥 일방의 입장을 신자들에게 피력하는 신부님의 태도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지, '신부님의 어린 양'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성당의 모든 신부님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은 단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단체가 외치는 것이 정말 모두 주님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가톨릭 모든 신부님들이 그 단체와 뜻을 같이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분명히 한국 천주교 내에서도 그 단체에 대한 내부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단체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기에 그런 면을 경계하는 많은 신부님을 비롯한 성직자도 존재하는 것이다.

진리.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진리일까. 나보다 훨씬 하느님을 잘 알고, 기도를 많이 하는 신부님의 말씀이 진리일까. 아니라면 내가 믿는 것이 진리일까.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표현과 사상의 자유 등을 부르짖는 교회에서는 시사적,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계속 정치적, 시사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우리 본당 신부님. 군생활을 할 당시, 외박을 나와서 가끔 지금의 동네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가 이런 세뇌(?)에 시달려서, 부대에서 다니던 성당 신부님께 나의 이런 처지를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 신부님께서는 간단하게 "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는 것이지, 신부의 말을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라는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미사시간에 자꾸 거부감이 생기는 것을 주체할 수 없다.

한국 천주교는 분명히 많은 비(非)신자들에게도 사회기여, 참여활동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고, 나 또한 가톨릭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 참 뿌듯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과 개인의 견해차이가 다분히 존재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주님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은 매우 거북하다.

가톨릭 신자들만 알고 있겠지만, 미사 중의 강론 시간은 말 그대로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에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경청할 수 밖에 없는데 정치적, 시사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 대한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다.

신부님이 미사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목청높여 피력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내 의견과 다르면 내가 안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사참석은 가톨릭 신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 가장 신성하고 기본적인 의무이다. 신부님이 마음에 안든다고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니다. 신부님의 정치적 견해와 나와 그것이 상이(相異)하다고 내가 교적상의 소속 본당을 놔두고 멀리 있는 성당의 미사에 참석해야 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종교가 모두 그렇지만, 가톨릭 또한 관용과 포용의 종교이다. 우리 본당 신부님은 '자신이 믿는 진리의 설파'를 가장한 소프트한 언어폭력을 내게,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게 행하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좀 자제하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부님의 태도에 예전부터 불만을 제기했었고, 신부님은 'I don't care. 듣기 싫으면 안들으면 그만'이란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신부님이 믿는 '진리의 설파'도 그것을 듣는 대상에 따라 '독선과 아집'이 되어 다가갈 수도 있다. 또한 성당의 미사시간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이들이 모이는 시간'이 아니라 거주지의 구역에 따라 배정된 신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과의 대화를 위해 모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나이가 있으신 신부님이지만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주일미사를 집전하시는게 아닌가 무식한 내가 감히 생각해본다.

나는 매주 성당에 가는 것이 두렵다.

"오늘은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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