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수험생, 2010~2012

잊지못할 밤, 그리고 다짐.

by hyperblue 2012. 2. 16.

아마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끔찍한 밤이었다. 다신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하기 싫다고 안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마냥 두렵다.

왜 이제야 해보는 걸까. 예전에는 군복무 중이어서 하지 못했던 그 일을 이제와서 직접 해보니 정말 끔찍하다. 혼자 살다보니 자꾸 쓸데없는 청승만 늘어가는 것 같기도...

'청승'이라고 치부하기엔 참 아팠다. 이래서 인간은 홀로 살면, 홀로 있으면 안되는가 싶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감수한 리스크인데 바보같이 난 참 쿨하지 못하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 애써 쿨한 척 하려하지만 쿨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10일 후 또 의미없이 지나가는 올해 시험이 끝나면 나머지 것들도 어서 정리해야겠다. 그렇게 의미없이 쳐박아두었던 모든 것들이 모두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공부도 공부이지만, 인생은 여러모로 참 쓰라리다. 오버스럽게 '내 인생만 쓰라리다'라고 하진 않겠다. 누군가는 이 추운 밤 머물 곳조차 찾지 못해서 아파하고 있을텐데, 난 따뜻한 방안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여기에 징징대고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이 현실에도 은근히 잘 맞는듯. 등따시고 배부르니 난 그저 이런 것에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더 높은 차원의 갖고싶은 그 어떤 것을 갈망하면서. 여튼, 귀를 닫고, 앞만 보고 달리면 참 별 것 아닐 것 같은 일들이 결국은 그렇지 못하다, 내겐.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이미 성숙해진 자들이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듯이 내뱉는 위로 아닌 위로요, 궤변이다. 성숙해졌는데 되돌이켜 보면 아팠던 기억이 더러 있었던 것이지, 성숙해지기위해 아파야하는 것은 아니니깐.

화제를 돌려서, 내가 스스로 연장했...다기엔 비루하지만, 놓아버린 이번 시험. 이런저런 핑계도 많지만 결국 그 문제는 옆에서 다른 선택을 부추기는 친구도, 혀를 끌끌차는 친구도, 시간을 공유한 타인도 아닌 바로 '나'.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하지만, 방황은 이따금씩 할 지언정 포기는 안하련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은 이른 것 같다. 내 나이 스물여섯, '올 때는 순서 있어도, 갈 때는 순서없다'는 재수없는 말이 좀 신경쓰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남성 평균 수명을 따져봐도 그렇게 빠듯한 시간은 아니다. 남들보다 좀 늦을 수도 있고, 결국 지쳐서 완전히 포기할 수도 있지만 그걸 '인생의 낙오'라고 하기엔 수 많은 선택의 길이 열려있지 않나. 이것도 결국 수틀리면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기위한 치졸한 자기위안인가.

대단한 감투를 쓰고 싶지도 않고, 가끔은 그냥 좋아하는 음악이나 원없이 듣고 기타줄이나 튕기며 한량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던져진 이 현실은 내가 무언가에 도전하기를 원하고, 난 그 도전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난 잡기에 능...하지는 않아도 살아오면서 비슷한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물론, 모두가 감탄할만큼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언젠가는, 내가 훗날 무슨 일을 어디서 누군가와 하고 있든, 그 소소한 잡기들이 좋은 방향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이 '근자감'은 오만함이라기 보다는 내가 가슴속에 늘 품고 있는 낙관적인 미래관의 발로이다. 가끔 pessimist인척 하게 되지만, 그건 단지 내가 상황과 감정에 많이 휘둘리기 때문인듯.

근래에 다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기도도 하게 된다. 수 많은 가톨릭 신자중 한 사람으로서 일종의 소명의식도 갖고 있다. '선교의지'와 같은 종교적 색채가 짙은 것이라기보다는, '나'라는 하찮은 그릇이 내가 가질 직업이나 여러 활동을 통해 이 세상과 사회, 국가를 보다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되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 이런 것이 항상 마음 속에 있다.

좋아하는 밴드 Chevelle의 앨범 중 하나는 'Wonder What's Next'다. 내가 나 스스로를 밀어넣어버린 쳇바퀴같은 수험생활의 굴레 안에서 난 매너리즘에 빠져 'Wonder What's Next'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내게 항상 내일 할 일은 '늘 똑같은 그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기'였으니깐. 결국 그것도 제대로 못했기에 이렇게 되긴했지만.

지금 당장은, 앞으로 얼마간은, 미래를 궁금해하기 보다는 지나간 순간을 곱씹으며 암기사항을 자꾸만 까먹는 나를 타박해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거지향적 활동'이 모여서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꽃'을 피우리라 믿는다. 그것이 '합격증'이라면 참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선택한 이 텁텁한 수험생활은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훌륭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난 항상 도전적인 삶을 살았다. 실패보다는 성공이 월등히 많아서 그간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 1년의 생활과 내가 마주한 지금의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홀로서기'란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그리고 그것을 해낸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다고 손꼽을 정도의 어두운 터널 속을 홀로 걷고 있지만, 함께 웃어주는 친구들과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염치없지만, 올해 한번 더 달려보기로 다짐한다.

지난 1년의 시원찮았던 수험생활에서 비롯된 아픔과 여타 다른 관계의 시련. 얼굴만 웃는 것이 아닌, 마음이 웃을 수 있는 바로 그 날이 꼭 다시 오기를 소망해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