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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4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feat. 판공성사 @명동성당)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복지는 "명동성당"이다. 뜬금없는 소리이지만, 여차하면 근무시간 중에도 잠시 나와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있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교회의 가장 큰 경사 중 하나인 성탄이 다가오면서 천주교 신자들은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해야한다. 저번 주말 어쩌다보니 주일 미사를 거르게 되어 겸사겸사 해야겠거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집 근처인 신수동 성당에서는 시간 조율이 쉽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명동성당에는 나같은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상설고해소"가 운영되고 있고, 어제도 퇴근 후 바로 뛰어갔는데, 이미 운영시간이 지나버려서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더랬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점심시간이 무려 2시간에 달하는 .. 2021. 12. 3.
끝은 새로운 시작-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모든 것이 갑작스럽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여러모로 참 안좋은 시기. '왜 갑자기 지금?'이란 물음표가 뇌리에서 떠나지는 않지만, 또 묵묵히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우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서, 어미의 배를 박차고 나오는 그 직후부터 고통의 연속이다. 희노애락의 구성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항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드님이 듬직해서 너무 부러워요." 라고 립서비스를 날린 보험판매인 아주머니를 언급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날 많이 보고싶어 하시는 건 잘 알지만, 독립해서 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꿋꿋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2021. 6. 7.
정치적인 신부님때문에 불편한 미사시간 난 천주교 신자다. 아무한테나 떳떳하게 '난 가톨릭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마음과 행동이 신실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릴적부터 꾸준히 다녀왔고 군생활 중에도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내가 죽을 때 까지 함께 해야 할 종교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제대 후에 새롭게 나의 본당이 된 동네 성당 주일미사에 참석하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신부님이 '너무 정치적'이여서이다. 나는 기도를 하러,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과 대화를 하러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지 신부님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들으려고, 어떤 의미에서는 강요받으려고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신부님도 그걸 알법한데 우리 성당 신부님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워낙 확고해서인지 강론시간을 '주님의 가르침'을 빙자해서 은근.. 2010. 5. 30.
명동성당, 용산참사,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 ※ 사진 클릭하시면 좀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2009년 10월 29일) 명동대성당에는 많은 전의경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천주교 신자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세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 700여명의 서울청, 기동본부, 경찰서 소속 전의경이 새신자로서, 그들의 첫걸음을 축복해주는 대부(代父, godfather)로서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모여들었다. 우리 중대에서는 애석하게도 새신자가 한명이었다. 그리고 대부를 서는 나와 함께 이 곳까지 인도해주신 담당 선교사님까지 총 3명만이 참석. 다른 중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동대 같은 경우에는 중대당 수십명이 우르르 와있었다. 신자 입장에서는 참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소수만 참석한 우리 중대가 좀 부끄.. 2009.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