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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회사원, 2014~

끝은 새로운 시작-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by hyperblue 2021. 6. 7.

모든 것이 갑작스럽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여러모로 참 안좋은 시기. '왜 갑자기 지금?'이란 물음표가 뇌리에서 떠나지는 않지만, 또 묵묵히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우직하게 살아가야 한다. 삶은 그 자체로서, 어미의 배를 박차고 나오는 그 직후부터 고통의 연속이다. 희노애락의 구성 비율은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항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드님이 듬직해서 너무 부러워요." 라고 립서비스를 날린 보험판매인 아주머니를 언급한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날 많이 보고싶어 하시는 건 잘 알지만, 독립해서 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나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꿋꿋이,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당신의 아들은 늘 유쾌하고, 자신감이 가득하고, 어딜가든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그런 아들로서 계속 기억되고 싶다.

내 나이 어느덧 서른다섯- 돈도 많이 모으고 싶고, 회사에서 1인분 이상을 해내며 손익 개선에도 기여하고 싶고, 선후배들이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동료가 되고 싶고, 아둥바둥 틈틈이 공부중인 음악도 뭔가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 그 무엇하나 쉬운 것이 없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진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so far so good. 나를 칭찬하고 싶다.

화창했던 지난 토요일, 도저히 집에서는 일을 할 수 없어서 차를 끌고 회사로 향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무실에서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약간은 거짓말 같은 핑계로 향한 사무실. 휴일에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홀로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사무실에만 있지는 않았다. 몇년 전 언젠가처럼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터벅터벅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 때도 가슴 한 구석이 아팠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퇴근 후 바로 명동성당에 갔던 적이 있다. 그 때의 감정이 오버랩되었다. 정말 어렸을 적 부터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묘한 이끌림을 느끼며 미사에 참석했던 적이 꽤 여러번 있다. 내가 내 발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절대자가 부르는 것이란 약간은 수동적인 해석. 어쨌거나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가도 성당의 평화로운 기운과 기도를 통한 절대자와의 소통은 나에게 늘 새로운 힘, 다가오는 한 주를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그런 시간은 아니었다. 나의 잘못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고, 주체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나가게 해주는 시간이었었다. 고된 수험생활 시절에도 그랬고, 가끔 위험한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군생활 시절에도 그랬고, 언제나 그랬다. 이번에도 필시 몇년 간 신자의 책무를 모두 내팽개치고 냉담중인 나를 특별한 계기로 당신께로 이끄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날이 너무나 좋았고, 금방 성당에 당도하였다. 명동성당은 회사에서 정말 길 건너 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난 이것이 늘 큰 축복이라고 느낀다. 곳곳에 있는 성당마다 소위 급수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서깊은 성당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일상에서 큰 위안이 되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당- 힘들 때면 언제든 가서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당신의 은총을 구할 수 있는 공간. 늘 나 같은 '길 잃은 어린양'이 조건 없이 찾아가서 당신의 자비를 간구할 수 있는 공간- 그 곳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명동성당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성모상 앞에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무작정 상설고해소를 찾았다. 몇년 전에는 지하성당(crypto)에 위치해있던 것 같은데, 다른 장소로 옮긴듯 했다. 고해소에 도착하자 군대 전역 후에 현관문을 열고 날 반겨주시던 어머니를 마주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 올라와서 울컥했다. 고백기도와 통회기도를 바치고 난 후 고해소 안에서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신부님과 마주했다. 울컥해서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하다가 입을 뗐다. 몇년 만에 내가 성당에 다시 발을 들였으며, 내가 이 곳에 찾아올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노라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해달라고.

신부님께서는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담담하게 "세상만사에는 항상 끝이 있고, 그 끝은 또한 새로운 시작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앞으로 더 좋은, 새로운 출발이 있을 것이니 다시 힘내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씀. 하느님의 대리인이신 신부님께서 성호경, 기도문과 함께 나의 영혼을 씻겨주셨고, 그렇게 고해소 문을 닫고 나왔다.

보속으로 주신 기도문을 읊고 있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지난 날에 대한 후회, 밀려오는 회한. 엎질러진 것은 다시 주워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마땅히 없는 무력감. 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셨던 수녀님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진 못했겠거니 생각하며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렇게 당신께 다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되뇌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자취방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신수동 성당에서 드디어 주일 미사에 참석했다. 회계사 수험생 시절에도 서강대 안에 위치한 성당에서 미사를 참석할 수 없을 때 종종 갔던 곳인데, 이 근처로 출가한 후에 제대로 미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10개월만. 게다가 이번 일요일은 일반 주일이 아닌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이었다. 평소의 주일미사보다는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 우연치고는 절묘했다. 그리고 이 축일이 영성체 즉,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해 기념하듯이 나 역시 몇년 만에 다시 모신 성체 앞에서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나마 다시 날 당신께로 이끄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간의 냉담 끝에 가장 성스러운 의식인 성체성사를 하며 그 의미를 곱씹어보는 일요일. 가톨릭 신자로서의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이 바로 되지는 못할지언정, 노력은 해보겠다는 다짐으로 미사가 끝난 후 성당을 나섰다.

가톨릭, 즉 천주교가 가장 우월한 종교이고, 유일한 답이고, 진리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생각은 교리와 어긋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수 많은 종교가 가진 순기능을 믿으며 구성원들이 노력하면 그 부작용이나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한 자세로, 겸허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뒤집기 힘든 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빅뱅'이 이 세상의 시초임을 증명한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성서 글귀를 나 스스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하루 단위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현대 과학의 빅뱅이론과는 맞닿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있는 땅은 그대로고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신봉했던 과거의 가톨릭교회 사례도 있었기에 더더욱 고민했다. 교회의 가르침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나는 '성서는 과학적 사실을 매우 난해한 메타포어로 표현한 것이다'라고 나름의 괴랄한 결론을 내리고 황급하게 수년 째 이어오고 있는 신성모독을 그만두었다.

끝은 정말 새로운 시작이며, 시작은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 그리고 끝맺음이 수반된다. 가톨릭 신자 '레오'로서 다시금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본다. 미사 중에 경건히 읊조리는 기도문인 '사도신경'의 담담한 신앙고백을 되새기며, 가장 좋아하는 기도인 영광송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결연한 문구를 되새기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리라 다짐해본다. 나의 이러한 신앙고백은 수줍고도 비루하지만, 어쨌거나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고해소를 나온뒤 바라본 광경,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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