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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회사원, 2014~

나는 쉬이 이 회사를 떠날 수 없다.

by hyperblue 2021. 6. 4.

회사에서 알게 되었지만 업무와 관련없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나의 사적인 이야기, 고민, 금융시장 동향과 전망, 우리의 미래, 산업의 미래 그리고 회사의 미래- 수 많은 주제에 대해 굳이 술병을 앞에 두지 않고도 진지하게 때론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비슷한 또래들이 다같이 대리~과장 직급이다보니 꼭 입사 동기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열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입사 전에 학교에서 만났더라면 선후배 사이로 더 끈적한 정을 쌓았을 것 같은 고마운 사람들. 몇년 전에는 미리 말하지 않았던 내 디제잉 공연에도 가족처럼 찾아와서 응원해준 사람들- 한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들 모두에게 있을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엘레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장님께서 '얼굴 좋아졌네'라고 먼저 말을 붙여주는 곳,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불볕같은 더위가 찾아와도 쾌적한 환경이 유지되는 공간. 업무중에 가슴이 답답하면 지하상가를 한 바퀴 돌며 잠깐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건물. 언제 이 모든 것이 한순간 변할지 모르지만, 곧 입사 8년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는 모든 것들이 견고해보인다.

종종 느끼는 회사원으로서의 비애. 꼭 회사원이 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진 않을까란 생각. '이쯤 했으니 다른 회사로 가볼까'란 막연한 이직 생각.  특별한듯 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내 또래 회사원들의 고민을 나도 하고 있는 것일게다.

간절히 꿈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지겠지만, 또 뭔가를 간절히 꿈꿀만한 주변 상황은 아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곤 생각지 않으나 카드값을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월급을 주고, 나름의 재테크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사회적 동물로서의 나의 소통욕구를 채워주는 공간. 그렇기에 가끔은 툴툴대면서도 감사하다고 느끼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회사원이 커리어로서의 인생 종착역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회사원이 꼭 '구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앞으로의 삶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으면 좋겠다. 등 따숩고 배부른 인생의 황금기인 지금의 나 자신이 이 생활과 처지에 정신적으로 익숙해지고 나태해져서 누워만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바람과 실천은 다른 문제이지만, 최소한 바람은 그러하다.

내가 많이 공부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별 것 아닌 것일지라도 지식을 나눠주고 싶고, 그 지식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언젠가 만들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하는 나의 음악이, 혹은 프로들의 눈에는 어설픈 나의 기타연주가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지식과 음악의 재생산/재창출만큼 나에게 더 흥분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누군가에겐 알량한 공명심, 허장성세 / 누군가에겐 신선함- 부디 후자로 다가갈 수 있길 소망한다.

그러므로 참 역설적이게도 난 이 회사를 쉬이 떠날 수 없다. 이 곳은 나에게 지식습득과 미래 준비 그리고 소통을 통한 사유의 귀중한 플랫폼이다.

2013년 겨울부터 '인턴쉽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란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우리의 우연한 만남은 참 질기고도 오래 간다. 앞으로도 내가 참 고마웠다고 눈물 흘리며 이 곳을 떠날 미래의 그 어느 날까지 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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