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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용산참사해결이 서울의 전의경에게 갖는 의미.

by hyperblue 2009. 12. 30.

아...방금전이었다. 아직 해결안된 몸살로 죽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고참이 깨웠다.

"야, 대박이야! 용산참사가 사실상 해결됐대!"
"에이.....구라...뜬금없이 그게 왜 해결됩니까.."

그렇게 컴퓨터에 앉아 기사를 검색한 순간, 우와. 이거 진짜다. 그 '용산참사'가, 나의 군생활을 가득 채웠던 그 사건이 드디어 끝이 보인다. 용산참사가 터졌을 때 난 일경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끝이 보이는 수경이 되어있다. 시간은 참 잘도 간다.

아직도 신기하다. 뭐, 요즘은 소위 '특별방범기간'이라서 내가 소속된 중대와 같은 방범순찰대는 특별한 큰 집회 등이 없는 이상 각 경찰서 관내 방범근무와 교통근무 등 생활치안쪽에 전력투입되고 있어서 용산에 안간지 꽤 됐지만 그 전까지는 내집처럼 오가던게 용산이더랬다.

용산참사현장, 남일당빌딩

이젠 여기에 글로 써도 상관없겠지. 무관심한 이들에겐 그저 오래전에 있었던 '용산참사'는 서울에서 군복무중인 전의경에게 크게 2개의 풀타임 근무지를 남겼다. 참사현장인 용산 남일당빌딩(이하 '남일당'),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있는 용산 순천향대병원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얼마전에 전국철거인연합회(이하 '전철연') 의장 남경남이 거처를 옮겨 은신하고 있다고 밝혀져서 새로운 근무지가 되었던 명동성당도 있다. 이외에도 용산참사 관련해서 지나간 2009년 내내 있었던 수개의 도심권 대형집회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말그대로 용산참사는 경찰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떡밥'이었던 셈이다.

2개의 메이저 근무지인 남일당과 용산순천향대병원은 가끔씩 우리동네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올정도로 자주 가곤 했다. 일주일에 3~4번은 가서 아침일찍부터 하루종일, 혹은 해질 때 쯤가서 그 다음날 해뜰 때 까지 철야를 하곤 했다.

간혹 '용산에서 터진 사건이니 용산경찰서 소속 전의경이 전담하는 것 아니냐?'라며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연히 아니다. 24시간 쉴틈없이 우발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된다. 상설진압중대로 분류되는 기동대, 전경대, 내가 속한 방범순찰대가 상급 지방청인 서울청의 명을 받아 계속 돌아가면서 그 곳에서 근무를 해왔다. 물론 근무편성의 기준이란 것은 없다. 늘 급변하는 매일매일의 치안상황을 고려해 서울전역에 경력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도 가끔씩 "아이씨...우리 중대 이 근무지 꽂힌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자주 가는 때도 있고, 이상하게 안갈 때도 있고, 뭐 그런식이다.

특히 참사현장인 남일당은 내 군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참사발생직후의 그곳은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자욱한 생지옥이었다. 두꺼운 진압복을 껴입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의 2층에서 방패를 앞으로 한채 근무할 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실시간 근무인원이 너무 많아서 철야하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그 때 내가 한 것은 원망이었다. 이 참사를 촉발시킨 모든 이에게 향하는 원망이었다.

남일당에서 난 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조직의 일부라는 이유만으로 근무중에 전철연 사람들로부터 "여기가 어디라고 쳐다봐 이 개새끼야!"와 같은 무수한 육두문자를 들었고, 소금을 맞은적도 있었다. 순천향대병원에서도 그 유명한 '문신부'님께 육두문자와 함께 생수병의 물을 맞기도 했다. 그는 마치 마귀를 쫓는 엑소시즘 의식을 행하며 성수를 악마에게 뿌리는 양 장례식장 정문에서 근무중이던 내게 물을 뿌리며 욕을 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말라는게 상부의 방침이었다. 말은 쉬웠지만 그것을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을 금할 수 없었다. 솔직히 그랬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이를 갈았다. 가끔 그들을 증오했다. 난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폭력경찰도 아니었지만, 그저 폭력전경의 일부, 경찰의 꼭두각시로 싸잡아 매도될 뿐이었다.

지난 1월 말에 터져서 지금까지 그 여파가 지속됐던 용산참사. 나를 비롯한 서울에서 군복무중인 전의경에겐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군생활의 1년 조금 안되는 시간을 가득 채운 바로 그것. 내 군생활이 정확하게 22.5개월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말 끝나는 것일까? 이래놓고 또 협상결렬이라고 다시 각을 세우면 어떡하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용산참사 1주년'과 관련된 대형집회를 예상하며 조용히 날짜를 세오던 나에겐 아직도 꿈만 같다.

애초부터 난 정치적인 측면엔 관심주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제 매듭이 지어진다는 바로 이 참사. 더이상의 정치적 논란은 다 제쳐두고, 소중한 생명 6명이 아무 이유없이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모두가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그 날도 안전진압을 목표로 가족의 품을 떠나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경찰특공대 故 김남훈 경사와 살기위해 투쟁하다가 하늘로 간 용산철거민 5명 모두의 명복을 빈다. 이 다섯분 모두 이제는 차가운 순천향대병원에서 나와서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고 모든 것을 잊고 떠나갔으면 좋겠다.

p.s. 지금 이 시간도 용산에서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근무중인 동료 전의경 대원들, 함께 고생했던 경찰직원분들도 이제 한 시름놓을 수 있길....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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