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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이렇게 난 악마가 되어간다.


난 조금씩 악마가 되어간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꿈틀거리는 그 사악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마음고생하고, 스트레스 받아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나고보면 별것도 아닌 일, 제대하면 다 추억처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인데..일이 하나둘씩 터질 때마다 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내가 우스운 걸까. 매일 웃는 모습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하는 내가 바보인 걸까. 난 또 왜 이렇게 신경써야 하는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사태에 상응한 조치는 널려있다. 힘들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많다. 근데 하기 싫다. 자꾸 트라우마처럼 옛날기억들이 날 괴롭힌다. 그들과 똑같이 함으로써 난 내가 저주하던, 내가 싫어하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갈 것이다.

맘 편히 다 모른척하고, 뒤돌아서서 정신차릴 때 까지 힘들게 괴롭히면 되는데... 애초부터 나같이 물렁한 놈한테 이런 짓 시키는게 지휘관의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평범한 학창시절 반장, 부반장, 대장놀이는 재밌게 했는데, 오히려 군대에서 더 힘들다. 난 민주적인 집단의 민주적인 리더가 되기를 원했지, 이런 사람이 되려고 했던게 아니었다.

애초에 콱막힌 위계조직인 군부대에서 그런 리더가 되기를 꿈꿨던 내가 바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나의 이런 목표가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것 같아 무섭다. '좋은게 좋은거지'란 내 생각은 확실히 틀렸다.

왜 제대하던 옛고참들이 넌지시, "아래새끼들 잘 해줘봐야 하나도 소용없다."고 하면서 부대를 떠났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정말, 잘 해줘봐야 하나도 소용없다. 물론,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인간적인 정을 교감하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만, 어떻게 자기이익을 더 찾아먹을까 고민하고, 날 우롱하고, 기만하는 놈들에게는 정말 하나도 소용없다.

사람은 보통 무섭고 성격이 더러운 사람에게는 빌빌거린다. 그런 사람이 맨날 자신들을 괴롭히다가 한번 잘 해주면 '천사'소리를 듣는다. 성격 좋고 착한 사람에게는 그저 모든걸 당연시한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괴롭히거나 화를 내면 '악마'소리를 듣는다. 강자로 보이는 자 앞에선 무릎꿇고, 약자로 느껴지는 자 앞에선 한 없이 업신여기려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람의 본 심리인듯. 마치 사회학적 실험을 하는 양, 모든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을 얻고 가려고 했는데, 그 방법이 무조건적인 햇볕정책은 아니란 결론이 도출됐다. 아니, 도출됐다기보단 주변의 상황이 강요했다. 여긴 시키면 하고, 시키지 않으면 안하는, 수동적이고 상명하복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군대인 것이다.

난, 원래부터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근데 이 곳에서, 이 시점에서, 정말 굉장히 오랜만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순수한 분노를 느낀다. 믿었던 이들에 대한 배신감, 그들을 믿었던 바보같은 나에 대한 자괴감, 나의 '사람보는 눈'에 대한 실망감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한꺼번에 느낀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눈앞에 뵈는게 없어진다. 정말 주먹이나 발이 나갈 것 같다. 나의 자기제어력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이미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듯 싶다. 이게 내 자기제어력이 강하단 말은 아니다.

불신과 분노 안에서 몇일째 살아가고 있다. 난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할 것이다. 정 못하겠으면 그 때가서 깨끗하게 포기하겠다.

난 이미 악마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악마는 내 안에서 오래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난 지금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던 그 존재의 실체를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난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세상은 천사만으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천사가 있기에 악마가 있고, 악마가 있기에 천사가 있다. 검은색은 흰색이 있기에 의미있고, 흰색은 검은색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더이상 두려울 것도 없는 난 스스로의 불안감에, 자괴감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싸우자. 난 훗날 제대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