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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수험생, 2010~2012

회계사 수험생활을 정리하며, 지난 2년간의 소회

by hyperblue 2013. 3. 4.

#1.

 

여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참 부끄럽다. 여기저기에 '저는 이렇게 해서 합격했어요'란 합격수기만 잔뜩 있는 마당에, '저 불합격했어요'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것 같으니깐.

 

지난 2013년 2/24(일) 제48회 공인회계사 1차 시험일이었다. 약 2년간 바라보며 준비했던 시험이다. 결과는 실패. 1차 시험조차 통과 못하는 바보같은 내 모습에 잠시동안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간절히 합격을 염원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과 가채점 후 대면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평소에 날 응원해주시던 모습들을 계속 봐왔기에 충격이 얼마나 큰지 눈에 보였다. 사실 나보다 부모님이 더 힘들어하신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스물일곱. 2년을 이 공부에 투자했다. 불합격이 확실시 되는 마당에 '매진, 전력투구' 같은 단어는 차마 낯뜨거워서 못쓰겠다. 사실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적잖이 놀았고, 적잖이 즐겼다. 막판에 체력을 소진하며 스퍼트를 낸 것은 시험 전 약 6개월 정도이다.

 

하루에 순공부시간 10시간 이상을 꼬박꼬박 채우려고 노력했다. 6개월 정도 매일매일을 관리하기 위한 공부계획표를 만들어서 기록했고, 거기에 적는 나의 공부기록이 헛되지 않게 하리라 늘 다짐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아침 6시에 기상해서 온 몸을 옷과 목도리로 싸매고 아직 아침해의 따스한 온기를 머금지 않은 차디찬 새벽공기를 마시며 학교 중앙도서관에 등교했고, 시커먼 밤하늘이 드리운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다른 누군가는 더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것은 순전히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복된 시간이었다.

 

2월 초에 1차시험을 약 20여일 남겨두고 모의고사를 봤다. 점수가 안좋았다. 그 때 그 충격은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모의고사는 모의고사일뿐'이라고 친구들이 위로해줬지만, 막상 내가 쌓아온 내공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란 생각과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좌절했다. 그렇게 남은 3주 정도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다. 소위 말하는 '멘탈관리'의 실패였다. 감기 한번 앓지 않고 건강관리를 하던 내게 심한 몸살 감기가 찾아왔고, 몸 여기저기에 이상신호가 왔다. 정신적 패배감이 육체에 발현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침전과 회복을 반복하던 끝에 결국은 좋지않은 결말을 맞게 되었다.

 

자취방 한 켠에 가득 쌓인 수험서적과 지난 날을 회상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수 없이 자문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었는지와 지난 수험생활 전반을 돌아보려고 노력했다.

 

#2.

 

'회계사'란 직업을 알게된 것은 대학교 입학 후 였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도 잘 몰랐다. 마치 졸업하면 훗날 최고경영자가 될 것만 같은 느낌때문에 경영학과를 지망했고, 합격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학교에 제출하는 장래희망에 '국제변호사'등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 때 적었던 '대통령'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 반은 유난히 회계사를 준비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당시 선배들 말로는 03~04학번 때 부터 유행처럼 반 내의 분위기가 번졌다는데,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합격자도 꽤 많았다. 하지만 당시엔 알지 못했다. 그 정도의 합격자를 내기위해 몇 배의 수험생이 존재했었다가 지금의 나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사실, 이 시험은 어찌보면 만만하게 생각하기 쉬웠다. 기본적으로 '준(準)고시'라고 불리며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같은 악명높은 끝판왕급 시험보다는 그 진입장벽이 낮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나 역시 이런 유혹(?)에 넘어갔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왠지 행시나 사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고, 이 시험은 위의 고시보다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대내외적 인식에 동의하며 수험계에 발을 들였다. 블로그의 지난 포스팅을 보면, 공부를 갓 시작했을 때의 패기넘치던 내 모습이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부끄러워서 싹 다 지우고 싶지만, 그것도 인생의 기록이기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매년 1000명 정도의 최종합격자가 나온다는 것도 이 시험에 뛰어들도록 유혹하는 유인이다. '공부 깨나 했다는 사람들'에게 '저 1000명에 내가 못들리가'란 근거없는 자신감 정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 않은가.

 

회계원리를 수강하며 전의를 다졌다. 중급회계에서 움찔했다. 세법을 공부하며 '때려칠까'란 고민을 했다. 재무관리를 공부하며 '재미는 있는데, 이걸 시험장에서 제 시간에 풀 수 있을까' 싶었다. 상법을 공부하며 '회계사는 이런 것까지 알아야하나' 생각했다.

 

회계원리는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험의 시험범위는 알면 알 수록 방대했다. 동차로 일찌감치 합격하고 요즘엔 행시에 매진하는 능력자 친구는 내게 얘기했다. 난이도를 떠나서 시험범위는 행시보다 회계사가 더 방대한 것 같다고. 여튼 '합격기준 = 평균6할 득점'이라는 생각보다 넘기 쉬워보이는 이 허들을 난 넘지 못했다.

 

#3.

 

'공인회계사 최대 배출 학교'란 타이틀. 그 타이틀에 걸맞게 학교 중앙도서관에는 온통 회계사 수험서적이 펼쳐진 자리 천지였다. 이번 시험엔 얼마나 많은 같은 학교 학우들이 울고 웃었을까. 별로 의미없긴 하지만, 함께 이번 시험에 응시한 십여명의 선배, 동기, 후배들 중에 단 2명만 가채점 결과 1차시험에 합격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불합격자들은 대부분 시험을 접었다. 두 세살 많은 형들은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2~3년을 여기에 투자했는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채 다시 진로를 틀어야한다는 압박감은 본인 외에는 공감하기 힘들 것이다.

 

오전 10시에 공습경보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시험. 그 싸이렌 소리는 마치 '응시자 인생의 분수령'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 위협적인 소리가 싫었다.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와 시험지 넘어가는 소리만 가득했던 시험장. 시험이 끝나는 오후6시까지 다들 자기들이 선택한 인생길의 교차로에서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냈다. 1교시, 2교시가 종료되면서 중도 결시자가 늘어났다. 마지막 3교시에는 80명이 지정된 시험장에서 10명이 훌쩍 넘게 도중에 포기했다. 나 역시 '이번에도 힘들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 중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락을 떠나서 그간 힘겹게나마 여기까지 달려온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4.

 

가채점 후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며칠을 고민했다. '한번 더?'란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고, 두번의 불합격은 '이젠 이 시험 외에 다른 길을 찾는 게 어떠냐'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이 시험을 접고, 다른 길을 찾기로 결정했다. 이젠 쓸모없어진 필기가 빼곡한, 허리까지 오는 수험서적들을 버릴 때의 그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독서실과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낸 지옥같던 혹은 보람찼던 하루하루가 스쳐갔다. 2년짜리 군대를 한번 더 다녀온 기분. 하지만 손에 쥐어진 전역증은 없었다. 일종의 '불명예 전역'이랄까.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이렇게 자존감이 낮았던 적이 지금까지 살면서 있었나 싶다. 정말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이것도 못하는데, 다른 것이라고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자꾸 괴롭힌다. 이젠 예전의 자신감 넘치던 날 다시 찾고 싶은데 지금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던 20대 초반의 그 패기가 그립다.

 

2년의 락밴드 활동으로 점철된 대학생활, 2년간의 군생활, 그리고 2년간의 수험생활. 돌이켜보니 이렇게 내 20대의 대부분은 지나갔다. 이제 남은 20대는 채 3년도 되지 않는다. 슬프다. 하루빨리 이 패배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고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시험장에서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블로그에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남긴다.

비록 생각하면 할 수록 쓰디쓰지만, 이 감정을 훗날에도 상기시킬 수 있도록.

 

2013년 2월 24일(일) 경희대 청운관.

 

마지막으로, 날 응원해준 우리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사실,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던 것은 이들의 힘이 가장 컸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초콜릿 하나가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든 그 때 그 순간을 기억하며 나도 이들을 위해 꼭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이 세상에 '후회없는 선택'이 있을까. 솔직히 후회한다. 결과를 알았다면 누구나 그랬듯이 이 시간에 다른 것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결과도 나의 것이다. 성인이 된 후 마주한 가장 큰 인생의 이벤트였다. 난 이 시험을 통해 인생의 엄청난 무게와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배웠다.

 

나는 비록 이 곳에서 실패의 쓰라림을 안고 떠나지만,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꼭 그 노력의 열매를 맺고 웃으면서 수험계를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지금의 아픔과 좌절이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블로그의 '수험생'이란 카테고리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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