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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취준생, 2013~2014

중고거래 사기꾼에게 사기치기 (부제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있다.)

by hyperblue 2013. 4. 23.

※ 가독성 향상을 위하여 사진들을 가감없이 원본사이즈로 업로드한다.


 

어제, 기분 좋은 월요일 밤.

 

여느 때와 같이 휴학생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즐기며 대학 동기 김모군의 자취방에서 즐거운 치맥타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시작된 친구의 얼마전에 구입한 갤럭시노트2 자랑.

 

"아이폰은 이런거 안돼. 노트2는 이런 것도 돼. 노트2>>>넘사벽>>>아이폰"

 

자타공인 앱등이인 나에게 평소였다면 별 의미없는 공격이었지만, 적당히 올라온 취기 탓인지 어젯밤엔 그의 달콤한 말에 가슴 깊은 곳의 뽐뿌가 미약하게나마 올라왔다. 그 광활한 5.5인치 AMOLED 대화면의 풍부한 색감과 움직이는 바탕화면을 바라보는데, 이 날 따라 나의 아이폰4s는 볼품없이 작기만 한 한낱 장난감처럼 보였다.

 

안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사파리 주소창에 cetizen.com을 입력하고 있었고, 난 세티즌에 올라온 KT용 갤럭시노트2 매물의 중고시세를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중고거래만 어언 8년차인 중고계의 중수인 나의 머릿속에 "휴대폰 중고거래의 진리 = 세티즌"이란 공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비상금이 아니지만, 그리고 사실 나의 알량한 비상금으론 구입이 불가능한 강력한 중고가를 자랑하는 갤럭시노트2 였기도 하지만, 눈팅만 잠깐 하고 바로 끄려고 하던 찰나에 바로 아래와 같은 매물이 눈에 들어왔다.

 

 

평균시세 60만원인 노트2가 무려 40만원에 올라온 것. 깜짝 놀라서 기본적인 판매자 가입일 체크와 지난글 체크를 했지만, 특이점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보통 1차적으로 여기에서 사기성 매물은 걸러지는데 이 매물은 이렇게 나의 1차 필터링을 가볍게 통과했다.

 

또한, 평균 시세대비 너무나 저렴한 것은 계속해서 강한 의심을 하는 것이 중고거래의 철칙이기 때문에, 나의 2차이자 최종적 필터링이라고 할 수 있는 '더치트 피해사례 정보검색'을 시작했다. '더치트'는 중고거래의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예방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사이트로서 피해사례가 접수된 휴대폰번호, 이름, 계좌 등을 검색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기성 매물 역시 여기에서 걸린다. 중고거래를 하는 이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곳으로서 나는 감히 이 곳을 '중고거래의 위키피디아'라고 내 맘대로 칭하고 싶다. 아무튼... 만약에 여기에서도 어떠한 사기피해 정보가 검색되지 않는다면 해당 판매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거나, 자신이 근래의 최초 피해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난 내가 후자가 될줄은 취중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쿨매를 그냥 날려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필터링이 끝난 즉시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고, 판매자와의 거래가 쿨하게 성립됐다. 중간에 약간 미심쩍은 부분도 있었지만, 2차에 걸친 나의 필터링을 통과했고, 현재까지 약 8년간 물건을 사고팔면서 단 한번도 사고가 나지 않은 나였기에 운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어쨌든, 판매자가 울산에 살고 있다고 했기에 가장 위험하지만 일반적이기도 한 택배거래(구매자가 계좌이체를 하면 판매자가 확인 후 물건을 보내는 형태. '서로간의 신뢰' 외에 어떠한 거래안전장치도 없음)를 결국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계속하여 올라오는 취기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친구집에서 얼마 후 꿀같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6시 반쯤, 친구집이라서 잠자리가 조금 불편했던 탓일까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고,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 이유없이 세티즌 중고장터를 또 눈으로 훑어봤다. 아뿔싸....그러던 와중에 발견한 충격적인 매물....

 

 

분명히 계좌이체까지 끝나고 거래가 성립된 매물이 새벽4시에 다시 올라온 것이다.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뭔가 착오가 있겠지'를 머릿속으로 계속 반복했지만, 나의 슬픈 예감은 내가 40만원짜리 택배거래 사기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기 시작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고, 그닥 좋지 않은 87년산 두뇌는 이 사태를 어디에서부터 해결해 나가야할지 숨가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때 까지만해도 아직 이 판매자가 확실히 사기꾼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 판단을 명확히 내리고자 나의 주특기인 '구글링'을 미친듯이 하기 시작했다. 더치트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름과 휴대폰 뒷자리, ID 등을 마구 조합해서 찾다보면 신상과 관련된 무언가 발견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십여분간 검색했고, 결국 아래와 같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는지 이유없이 해당 사기꾼의 신상정보를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씨뿌리는 농사꾼 마냥 마구 뿌리고 다니는 겁없는 디씨인 발견. 휴대폰 번호의 국번이 판매자의 그것과 달랐지만, 이름과 뒷자리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봐서 내가 거래를 한 그 녀석과 일치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92년생 새파란 놈이란 고급 추가정보까지 획득하고, 이제 어떻게 이 녀석에게 접근하여 사태를 풀어가야할까 밑도끝도 없이 또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머리아픈 고민 와중에 '사기꾼에게 사기를 치자'란 확률이 낮아보이는 허접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고, 성공확률에 대한 대안평가는 잠시 미룬채 일단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고나서 바로 하게 된 것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교체.

 

 

자랑스런 대한민국 의무경찰 전역자이며 그 누구보다 풍성한 군생활 사진을 보유했기에 얼굴이 또렷이 보이며 경찰제복이 강조된 사진을 하나 찾아서 프로필 사진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전역한 부대 소속 경찰서 이름을 의미심장하게 게시 완료.

 

이제 여기서부터, 4/23(화) 오전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사기꾼에게 사기치기'는 시작된다. 상황이 다 끝나고 이 글을 적고 있자니 마치 B급 독립영화를 한 편 촬영한 후 후기를 적고 있는 기분이다. 다소 포토샵 편집이 조악하지만, 이 부분은 독자들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기를 부탁하며 아래에 사기꾼과 주고받은 흥미진진한 문자 내용의 전모를 공개한다. 사기꾼 녀석이 막판에 당황하여 '형이 했다', '동생이 했다'며 여러개의 자아가 공존하는 다중인격을 발현하는 모습도 꿀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사건은 논픽션이다.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나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에피소드여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결말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길고 긴 SMS 대화는 '기-승-전-(결)'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의'는 '의무경찰'의 약자이다(아래를 읽고나면 알게됨).

 

- 미리하는 세줄요약 -

 

1. 술에 살짝 취해 판단력이 흐려져서 무모한 휴대폰 택배거래 시도함. 40만원까지 바로 계좌이체함.

2. 내가 사기의 피해자가 되었음을 인지하고, 무모한 역(逆)사기 시도함.

3. Success. 40만원 전액 환불받음 + 갑자기 사기꾼의 병역멘토가 됨. (그는 꼭 '서울' 의경을 지원할듯.)

 

P.S.

 

1. 경찰청은 현역시절부터 전역일이 3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블로그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의무경찰 병역자원 유치에 열과 성을 다하는 내게 하루빨리 감사패를 수여하라!

 

2. 사법연수원에서 바쁜 학업 와중에 카카오톡으로 법리자문을 해준 친구 박모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 SMS대화 전문은 7개로 분할 편집하였다. 사진 윗쪽에 파일 순서를 영어서수(序數)로 명기하였다.

 

::: 사기꾼에게 사기치기 :::

부제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패 건들지마.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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