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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메말라가는 감정, 봄바람 따라간 여인

by hyperblue 2009. 12. 20.

역시나 춥고 추운 일요일 오전, 오늘은 좀 쉬나 싶었지만 어김없이 나가는 광화문 출동. 울적하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전역의 해인 2010년도 다가오지만 내 마음은 그리 싱숭생숭하지도, 설레지도 않는다. 하루하루 후임들과 떠들고 장난치며 보내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 뭐, 주변사람한테 물어보지 않고는 당장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깐.

이젠 별로 바깥 사람이 보고 싶지도 않다. 바깥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보다 외박나간 친한 후임이 더 그립고,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까?

얼마전에 소개팅한 9주 고참인 신유의 설레는 이야기들. 그 설렘.... 나도 느껴본적은 있는데. 이젠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상상만할뿐. 그때 어땠었지? 애써 생각해내려 애써보지만 비슷한 느낌만 떠오를뿐, 그 때 그 기분 자체가 떠오르진 않는다.

이래서 연애세포는 활동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간다고들 하는가. 그래도 듣기만 하는걸로도 충분히 즐겁다. 감정이입이란걸 해볼 수 있어서.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럴텐데'란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확실히 만23년차를 살아가면서 느껴보니 이성친구만이, 이성친구중에서도 감정의 심연까지 공유하는 '여자친구, 애인'이라는 존재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인 어머니로도 채울 수 없는 그 부분. 군대라는 이 동성간의 다분히 억압된 단체에서 난 그 감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고 노력했다. 이제 편하고 여유가 있어지니 자꾸 그 부분이 '채워주세요!!'라고 내게 마구 소리치는 것 같다.

뭐 이러나 저러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군인인 내 입장에서 이 세상의 대한민국 남자는 '군필자와 미필자, 군인 그리고 면제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최소 2년이라는 나의 인생을 국가에 봉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그 전역증. 난 그걸 얻기위해 안달이 나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또한, 머리가 굵은 여자들은 미필자와 군인을 절대 남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여자여도 그럴듯.

갑자기 머리를 불현듯 스쳐가는 노래, 뜨거운 감자 - 봄바람 따라간 여인.
입대 전에 혼자 들으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라면 가끔은 아무것도 안하고 '추억'이란 단어 만으로도 수 시간 감상에 잠길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면.


뜨거운 감자 - 봄바람 따라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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