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의무경찰, 2008~2010

운전자 여러분, 제발 운전 좀 쉬엄쉬엄...ㅠ_ㅠ

by hyperblue 2009. 12. 23.

매봉역 삼거리 근처.

어느덧 2009년도 끝이 보이고, 얼마안된 것 같은데 연말연시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에 따른 교통량 증가로 서울시내 대부분이 러쉬아워 때 마다 아수라장으로 변하자 친애하는 서울청장님께서 특별지시를 하달하셨다.

서울 시내 31개 全경찰서 방범순찰대 1개 소대를 교통근무전담으로 돌리라는 것. 그리고 우리 중대에서는 내가 속한 소대가 첫스타트로 당첨됐다. 그래서 며칠전부터 다른 소대가 방범근무를 나가는동안 아침저녁으로 줄창 러쉬아워 교통지원근무에 동원되고 있다.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기본적으로 교차로 상에서 꼬리끊기이다. 러쉬아워 때가 되면(특히 저녁) 신호등은 더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녹색불이 켜져도 이미 갈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나까지는 저 신호에 들어가야지'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정지선 앞으로 차머리를 들이민다. 너도나도 대부분 그런 탓에 신호가 바뀌어버려도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있는 차량들. 그렇게 교차로는 마비가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바로 뒷교차로, 그 뒷교차로로 계속 이어진다.

이 근무를 하면서 '교통상황은 듣던대로 하나의 유기체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차량들은 마치 복잡한 혈관을 오가는 적혈구와 같다. 한 곳이 정체되면, 동맥경화처럼 모든 교차로까지, 다른 경찰서 관내까지 그 여파가 그대로 이어진다.

이것을 막기위해 많은 교통경찰들이 주요 혼잡교차로마다 투입되어 무전공조를 통한 인위적인 신호기 조작으로 조금이나마 소통을 시키려하지만, 요즘같은 경우에는 이것마저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가끔 중앙선 한가운데에서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움직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빨간 후미등 행렬을 보고있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어쨌든, 이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경찰서관내마다 약 20여명이 채 안되는 방범순찰대 1개 소대가 교차로의 무질서를 제어하기 위해 다른 교통전종(專從)직원, 대원들과 함께 투입되는 것이다.

교통전종대원(경찰조직 내에서 전의경은 대원, 나머지는 직원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인 군에서의 병사와 간부)으로는 대표적으로 경찰서 교통계 소속으로 조금씩 배치된 의경인 자서교통대원들과 교통기동대(줄여서 교기대)라고 불리는, 기동중대인데 그 임무가 교통지원에만 한정된 의경들이 있다. 이들은 제대할 때 까지 늘 교통관련근무에만 동원되지만, 난 시설경비, 거점근무, 집회관리, 방범 등 자질구레한 경찰업무에 마구잡이로 동원되는 어찌보면 멀티플레이어, 어찌보면 이거저거 살짝 맛만보는 방범순찰대원이다.

어쩌다 한번씩 하다보니 어리숙한 이 근무. 내일모레면 수경(육군의 병장)이지만 횡단보도 근처에서 보행자 안전관리만 하다가 큰도로 중앙선 한가운데 들어가면 가끔씩 당황하기 일쑤이다.

어젯밤도 그랬다. 삽시간에 전방향이 마비가 되어가는 3호선 매봉역 삼거리. 인원부족으로 인해 거기에 던져진건(?) 나를 포함해 의경 3명. 간만에 해본 근무 중에서 제일 열심히, 약 2시간반동안 중앙선 한가운데에서 호각불고 불봉흔들면서 차량들 꼬리 끊으려고 쌩난리를 쳤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요즘의 고충이라면, 가끔씩 창문을 열고 시비를 걸어오는 운전자들이다. '딱 봐도 의경'이어서일까. '왜 내차부터 못가게 하냐'며 시비거는 택시기사와 일반 운전자들. 난 그저 무응답으로 일관하지만 난 나름대로의 직관(?)을 갖고 근무하는데 짜증나는 것은 사실이다.

30cm, 1m 간격을 두고 녹색신호가 점등되면 잡아먹을 기세로 내 옆을 쌩쌩 달려나가는 자동차들. 첫근무 때 느꼈던 생명의 위협(?)도 이젠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해지는 것은 꾸역꾸역 마시는 매연 때문에 계속 끓는 가래와 얼어가는 장갑속의 두손.

어머니의 따뜻한 포옹과 내방 침대가 미칠듯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조금만 양보한다면, 한 템포만 쉰다면, 모두가 교차로를 자기 차례에 지나갈 수 있다. 이 거짓말같은 말이 진리라는 건 늘 눈으로 목격하는 난 뼈저리게 느낀다.

이 근무가 힘들긴해도, 아침일찍 나가면 수고한다며 따뜻한 인스턴트 커피를 갖다주시는 주변 상점 아주머니와 고생한다며 초코파이를 건네주는 운전자 같은 분들이 있어서 뿌듯할 때가 많다. 연말연시가 지나가면 이것도 그만하려나.................휴우.....

따뜻한 히터 틀어놓고 '나만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오늘저녁 때도 서울시내를 가득 메울 여러 운전자 여러분, 조금만 양보운전 해주시고 교통경찰들 통제에 잘 따라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ㅠ_ㅠ

p.s. 그래도 정신없이 근무하면 시간은 잘 가서 '군생활'이란 관점에서만 보면 이 근무도 위험한것 빼고 나름 괜찮은듯.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