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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회사원, 2014~

이제 곧 직장생활 7년차, 동료들 덕에 순항중

by hyperblue 2020. 6. 27.

벌써 2020년 6월말- 다가오는 7월 1일에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지 만 6년을 꽉 채우고 7년차가 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참 신기하다. 끈기없고, 금방 질리는 성격인 내가 한 조직에 이렇게 오래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 사익을 추구하는 범인이기에 지금의 회사보다 페이가 조금 더 좋은 곳에 이직할 생각도 했고, 이따금씩 제안도 받았고, 결정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현재의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혹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일수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수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서일수도.

지난 한 주 동안은 내가 기존에 하던 외화와 평소에는 관심없던 원화(KRW) 자금관리까지 모두 해야 하는 기간이었다. 원래 해당 업무를 하던 형의 휴가로 인한 첫 대직(代職). 올해 초의 조직구조 변동으로 자금관리와 관련된 골치아픈 많은 업무들이 다른 부서로 이관되긴 했지만, 무언가를 처음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월/화/수- 특별한 돌발 이벤트 없이 원화, 외화의 현금흐름 관리와 '자금판'이라고 부르는 엑셀 장부정리까지 깔끔하게 잘 되어서 '이제 이틀만 더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찾아온 목요일 오후시간. 4시 반을 기점으로 슬슬 일일 마감을 준비하며, 자금이체와 장부정리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아뿔싸... 장부의 숫자가 맞지 않았다. 수십억이 오가는 통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는데 장부인 엑셀 자금판이 400만원 가량 틀어졌다. 처음에는 덜렁대는 나의 불찰이겠거니 싶어서 차근차근 다시 맞춰봤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심지어 내가 몇년째 밥벌이(?) 하고 있는 외화를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의 문제였다. "외화자금판 담당자가 결국 외화에 당했다."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이 말을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어느덧 퇴근시간인 5시반도 훌쩍 지났고, 난 단순한 엑셀함수들 사이에서 자괴감을 느끼며,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와중에 나의 마감자료를 받아서 추가 업무를 해야 하는 타 부서 후배의 '대리님, 아직인가요?'라는 메신저. 나의 잘못으로 누군가의 퇴근이 늦어진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나와는 달리 일찌감치 자기 업무를 마친 팀 후배들은 다들 컴퓨터를 끄고 퇴근 준비를 하는듯 했다. 평소 같았으면 각자 팀장님께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라고 꾸벅 퇴근 인사를 하며 집 혹은 약속장소로 향했어야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4개의 모니터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내 자리 뒤에 서서 멘붕하는 내 모습을 말 없이 다 같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누군가가 본다는 것도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다. '아, 어떡하지? 왜 숫자가 안맞지? 나 진짜 등신/천치인가?'라는 자책을 하면서 숫자와 수식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기에. 그렇게 팀 후배 3명과 앞 자리에 앉는 친한 타팀 선배 1명이 나의 멘붕현장을 라이브로 관전했다.

동공이 진도 8.0으로 흔들리던 당시의 내 모습

솔직히 부끄럽고, 조금은 싫었다. 나름 선배이기에 깔끔하게 업무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별것도 아닌 사칙연산의 트랩에 빠져서 숫자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금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또한, 우리 팀 분위기가 선배부터 차례대로 퇴근해야하는 꼰대스러운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멘붕하는 모습을 두고 사무실을 나서기가 다들 괜시리 찝찝했나보다.

어쨌거나 장장 1시간 반을 엑셀파일, 입출금기록, 환율과 씨름하였으나 결국 답을 도출하지 못하고 차후에 마무리하기 위한 트릭(?)을 쓴채 컴퓨터를 껐다. 컴퓨터를 끄고나니 눈에 들어오는 등 뒤의 동료 4명. 이렇게 그냥 집에 가기도 뭣해서 '같이 저녁 먹고 갈까?'라는 급제안을 했는데 다들 흔쾌히 받아줬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렇게 함께 저녁식사를 한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던 와중에 하게 된 자리.

나는 극도의 긴장이 일순간에 풀렸던터라 맥주를 마구 들이부었다. 그리고 우리 5명은 오랜만에 깔깔 웃으면서 예정에 없던 조합, 시간에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결혼준비중인 후배의 애환도 짧게나마 들었고, 부끄럽지만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고 지켜봐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도 마음 속에 샘솟았다. 간만에 들이부은 맥주 탓에 전철에서 자다깨다 하면서 집에 들어갔더니 소주냄새가 진동을 한다며 손사레를 치는 가족들이 반갑게 맞아줬다. 그렇게 대충 씻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인 채 스펙타클했던 하루를 마감했다.

정신없이 금요일도 지나가고, 토요일이 된 오늘- 다시 한번 목요일의 이 시간을 곱씹어봤다. 나는 후배들에게 밥 많이 사주고, 이모저모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좋은 선배와는 거리가 멀다. 그건 내가 잘 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능력있고, 좋은 사람들인지도 잘 알고 있다. 군에 있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항상 인복(人福)이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똑똑하고 성격도 둥글둥글한 선후배들과 함께 일하고 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이 회사, 그리고 조직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혹자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인사고과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이기에 한계가 있다며 현명한 대처를 주문하곤 한다. 학창시절의 인간관계와 철저히 구분하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별반 차이가 없다. 학창시절에 선후배들과 어울리던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주말에 가끔 만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속 얘기도 서로 많이 하고- 업무에 있어서는 서로에게 엄격해야 하겠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각자가 일상의 든든한 조력자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에 삶의 질/만족도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 바로 직장동료들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아무 말 없이 고통스러운 나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봐준, 그리고 위로해준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시 곱씹어보니 너무 감사하다. 물론, 글만 보면 '네가 선배니깐 마지 못해서 그런거지'라며 나를 꼰대 취급할 독자들이 있겠다 싶긴 하지만, 진실은 함께 한 그들만 알겠지.

선배가 웃으면서 '너 그래도 회사생활을 아주 못하지는 않았나보다'라고 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소위 '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조직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피해를 입는 사람은 없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지난 6년을 보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피해를 준 사례는 물론 적지 않지만.

좋은 형, 동생들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늘 내가 이 회사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만족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더 성장해서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든든한 선배이자 형이 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탑승한 이 배가, 조직이 더 승승장구해서 다 같이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이 자리를 빌어 소망해본다.

곧 7년차를 맞는 나의 직장생활은 중간중간의 흔들림 속에서도 좋은 동료들 덕분에 순항중이라는 기록을 남겨본다. 내게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P.S. 지난 목요일에 나를 괴롭힌 것은 결과적으로 회계팀의 지불전표 전기오류였다. 가장 마지막으로 의심했던 '시스템'의 문제. 덕분에 화가 좀 나긴 했지만, '내가 사칙연산을 잘못한게 아니었다'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덜어내며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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