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회사원, 2014~

잔인한 8월, 아직까지는 잔인한 2021년

by hyperblue 2021. 8. 29.

10년여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언제나 생각이 많을 때는 서강대교 위에 오른다. 한강 건너 여의도에서 보이는 회사 로고가 '너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고 날 비웃는 것만 같고, 10년의 세월이 돌고 돌아서 또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와중에 갑작스레 시원해진 밤 공기는 가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고, 나의 서른다섯도 속절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대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들이 내 앞에 기다리길래 이렇게 힘든 2021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한 주간은 입사 이래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잔뜩 쌓여있는, 답도 없는 일들과 거의 매일 야근하며 외롭게 싸워야했다. 그렇게 혼자 사무실의 불을 여러날 밝혀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들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랬다. 나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데 다들 하기 싫어하고 내가 조금 귀찮으면 되는 일이면 내가 해버리는 게 속편했다. 누군가에겐 재수 없는 '착한사람 콤플렉스'의 발로로 보이겠지만, 진심으로 그랬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다 시간만 있으면, 공수만 조금 들어가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애매하게 후배한테 주느니 내가 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더러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는 일들이 꽤 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나의 스탠스가 최근에 나 스스로를 곪게 만들었다. 시한이 주어진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제 때에 꾸역꾸역 다 소화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내가 '선의'로 끌어안고 있는 자잘한 일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중차대한 업무들까지 동시에 버겁게 소화를 하고 있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밤샘을 해서 끝내고 싶은 일들도 있었으나 학교가 아니기에 그런 벼락치기로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윗사람'들은 그런 건 관심없다. 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거고,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기에 스팟성으로 떨어지는 '특별한' 업무를 잘 해내야 유능한 회사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지금의 상황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을 갈아 넣어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게 그닥 티가 나지 않는다. 어찌보면 다들 싫어하는 성격의 업무이다. 잘 하면 티가 안나고, 못하면 티가 나는 일인데 심지어 손도 많이 가고 머리도 종종 써야하는 그런 일. 나는 그런 일을 어쩌다보니 올해 내내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나간 과거를 회계기준이나 여타 기준에 맞게 정리하고, 당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추측/예상하며 싸우는 일. 그럴싸하게 포장하니 실소가 나온다.

하루하루 마음에 골병이 들어 외적으로도 썩어가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선배가 전화로 따로 꾸짖었다. "너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줄 알아? 앞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해야하는 줄 알아? 왜 다른 지엽적인 일 때문에 그렇게 진도가 안나가? 그런 일들은 다 후배들 넘기고, 다른 팀에서 부탁하는 것들도 이제 너 일 아니라고 확실히 선 그어." 어떻게 들으면 '너는 지금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란 칭찬이고, 어떻게 들으면 회사생활 8년차가 되어서도 일의 경중도 구분 못하는 바보라고 꾸짖는 말이다. 알겠다고 마지 못해 대답은 했지만, 사실 갑자기 뭔가를 교통정리해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사람은 없고, 후배도 자기 일 때문에 힘에 부쳐서 허우적대는데, 나 조금 살겠다고 그렇게 할 수야 있겠는가.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아야겠다. 근데 그걸 언제...? 사실 지금은 이 질문 마저도 문제다.

'아, 정말 도저히 못하겠다'란 생각이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길 몇 번을 반복했을까. 몇천억원의 돈이 오가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의견을 내고, 상위 결정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견을 제시하고 포장하는 일은 좋게 생각하면 보람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숨이 턱턱 막힌다. '내가 감히'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가끔은 이미 위에서 정해진 결론을 보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나 스스로가 그 결론 자체를 납득할 수 없어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를 되뇌이며 자괴감이 들었던 적도 있다. 그게 바로 회사란 조직의 생리이고, 그게 내가 잘 해야만 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났고, 늘 그렇듯이 스쳐갔다. 모든 것이 정말로 쉽지 않다. 내 멘탈이 이미 워라밸의 붕괴로 바스라져있기도 했고, 평소에 잠을 제대로 못자니 얼굴 상태 또한 날이 갈수록 안좋아졌다. 오죽하면 간만에 갔던 본가에서 어머니께서 '왜이렇게 얼굴이 폭삭 늙었냐'고 하셨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거울을 통해서 물끄러미 바라본 내 모습은 피곤에 절어서 생기없이 평소보다 더 흑빛이었다. 우울했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이런 몰골로 처음 만나면 그 누구든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뻥뻥 터졌다. 나의 교만함, 부주의, 불운- 모든 것이 나의 부덕함에서 비롯된 것만 같고 뒤늦게 후회되기도 한다. 내가 노력한다고 갑자기 달라지기 힘든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는 무력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금 무리해서 평일 새벽미사에 가거나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묵주기도를 통해 절대자의 자비를 청하는 것뿐.

이번 주말은 아무 생각없이 푹 쉬자 싶어서 집에서 넷플릭스로 D.P.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다. 이 드라마는 정말 하이퍼 리얼리즘 그 자체였다. 사람에 따라 정도는 다르겠지만, PTSD가 좀 세게 왔다. 기안84의 전의경 소재 웹툰 노병가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 중간중간 파도가 되어 마음을 사정없이 때렸다. 부끄럽지만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나의 군생활은 드라마의 그것보다는 순하디 순한 맛이었지만, 비슷한 양태의 부조리와 폭력을 경험했기에 복잡한 생각이 올라왔다. 2008년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4주 훈련을 받을 때 쓰던 1950년대에 제작된 수통도 기억났다. 그 때도 군대는 쉽게 변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에서도 그런 뉘앙스로 표현된게 슬펐다. 닭장차 안에서 동갑인 고참새끼한테 단화로 쪼인트를 까였던 기억, 지금 같으면 같이 들이받아서 묵사발을 만들었을 것 같은 나이 어린 고참에게 내무반에서 맞았던 뺨. 아직도 생생하다. 나름 대한민국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마주했던 군대라는 공간은 역겨운 부조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경찰 조직이라고 드라마 속의 군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게 이 나라가 의무적으로 입대한 인적자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종국에는 나를 포함한 수 많은 '방관자'들이 "여긴 원래 이래."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던 공간. '나라도 나중에 바꿔야지' 했으나 결국 그렇지 못한 채 시원섭섭함을 안고 전역했던 그 때 그 기억-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헐값에 2년을 바쳤다는 전역 후의 자부심 이면에는 '씨발, 이런 좆같은 곳은 안갈 수 있으면 어떻게든 안가는게 맞다'는 결론 또한 함께 있었다. 드라마 속의 군부대도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대, 바람처럼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리는데, 그 마저도 완벽한 현실 고증이었다. 뭔가 눈물이 자꾸 났다.

오늘은 이 쯤에서 글쓰기를 멈추고 묵주기도를 하고 자야겠다. 우선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나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군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부조리를 참아내며 고생하고 있을 동생들을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도 갖가지 마음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 자신을 위해.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음악을 첨부하며 줄인다.

나만의 실수들로 채워가는 나의 인생 여정- 이제 내 마음 속 그 집에 거진 다 와가는 것 같다. 남은 4개월의 2021년은 지금보다 행복하길 소망하며.

Above & Beyond - Almost Home

I am where I am
Because I made it so
I have ways to deceive myself
And bind my soul

I was waiting to be found
But found that on my own
If I looked for the truth
It led me home

My own journey with my own mistakes

The way out is the way in
Just rearrange the things you know
The way out is the way in
The trail will guide you back again
The way out is the way in
And now I'm almost home

The way out is the way in

Some say where you are
Is where you're meant to be
That the lеssons always find you
'Till you learn to see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