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회사원, 2014~

가을아, 어서 오라.

by hyperblue 2021. 8. 16.

성당에서 이제 다시 대면 미사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기존보다 더 엄격해진 인원 제한이 적용되었긴 하지만 더 이상 유튜브로 평화방송을 보며 어색하게 비대면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보다 엄격해진 인원 제한 때문에 고령의 신자들이 낮 시간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젊은 신자들은 되도록 새벽미사인 6시를 이용해달라는 공지가 있어서 오늘도 알람 시계와 잠시나마 싸우며 5시 20분에 기상했다. 그래도 원래 밤잠이 없는 편인데다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5시 50분에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후 시계에 표시된 기온을 보니 섭씨 21도. 슬슬 가을의 그 시원한 기운이 느껴진다. 입추가 지나긴 했는데, 아직 8월 중순이어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라고 생각했으나 최소한 아침/저녁은 조금 선선해졌다. 또한 일출이 늦어져서인지 이제 이 시간이 아직 어둑어둑하다. 시간은 무심하게 제 갈길을 가고 있고, 계절은 변하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내가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 시간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신자들이 적지 않게 참석한다는 사실은 새삼 부지런한 삶에 대한 의지를 자극한다. 

계절의 변화만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게 해주는게 있나 싶다. 이번 여름은 개인적으로 끔찍히도, 지독히도 더웠다. 제대로 된 피서는 7월에 고등학교 친구 경덕이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재영이와 다녀온 2박 3일 여행이 전부였고, 산적한 회사 업무 때문에 휴가다운 휴가를 한번도 못쓴 채 9월이 다가오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재택근무보다는 사무실 출근을 선호해서 열심히 출퇴근을 했으나 인파를 뚫고 사무실로 출근을 마치면 온 몸은 늘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이럴 것 같지만, 그래도 야밤에 인파를 피해서 즐기는 한강 러닝은 제법 강바람이 시원해져서 할만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서강대교/마포대교 위에서 마주하는 여의도 빌딩 숲의 야경은 늘 장관이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각오로 살아온지 30여년- 조금씩 건망증 비슷하게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을 자각할 때 마다 서글프긴 하지만 배움은 늘 즐겁다. 그래서 이번 2021년 상반기, 혹은 대충 오늘 이 시점까지 내가 했거나 하고 있는 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1. EDM producing 관련 온라인 강의 수강

-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요즘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를 통해 다 배울 수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혼자 '강의 디깅(digging)'을 해서 괜찮다 싶은 것들을 짬날 때 마다 닥치는대로 듣고 있다. 어디에 예쁘게 정리를 하면서 배우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익숙해지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차후에 메인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DAW인 Ableton Live, 그리고 다양한 3rd party plug-in들의 사용법과 간단한 sound design, music theory 등 강의 종류도 다양하다. 명칭이나 이론 자체를 영어로 배우다보니 나중에 혹시라도 어디가서 관련하여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 나 스스로가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조금 걱정이 되긴 한다. 어쨌거나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아이디어나 느낌을 음악으로 만들어내겠다고 무작정 시작한 고독한 취미생활- 주변의 전문가들을 찾지 않고 손을 댄지도 거진 1년여가 다 되어간다. 작년 이맘때 자취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라며 이 곳에 포부를 적어놓기도 했다. 슬슬 허접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다고 느낀다. 언제까지고 배우기만 할 수는 없으니깐.

2. Final Cut Pro 온라인 강의 수강

- 음악과 영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조합인 것 같다. 시각/청각을 아우르려면 음악 뿐만 아니라 영상을 직접 만들줄 아는 것도 창작자로서의 삶에 꼭 필요한 스킬이라고 생각해서 이것도 외국인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윈도우 OS를 쓸 때는 독학으로 Adobe의 프리미어 프로 사용법을 익혀보려고 했는데, 이왕 애플 제품으로 생태계를 구성한 김에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가기 위해 Final Cut Pro를 제대로 써보기로 결정했다. 파이널 컷 프로로 생업을 영위할 것이 아니라면 취미생활 정도에 필요한 일반적인 사용법은 꽤 단순하고 직관적인 것 같다.

3. 글로벌 금융시장 모니터링

- 사실 이건 꼭지를 달아서 거창하게 쓰기엔 부끄럽지만, 회사에서의 업무와 직결된 부분이다보니 단순히 개인 주식투자를 한답시고 시황을 정리하던 때 보다는 더 상세하게,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올해 내내 시장을 트래킹하고 있다. CFA나 FRM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CPA 수험생 시절에 재무관리 공부를 잘 했던 것도 아니어서 걱정되긴 했지만, 꼭 그런 자격증이 없어도 매일매일 다양한 자료들과 유능한 애널리스트들의 리서치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름의 감이란 것이 조금 생기고 어설프게나마 시장 전망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스페셜리스트'인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제너럴리스트'로서 나만의 뷰를 만들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물론, 그 전망이 맞다고는 안했다. 그래도 '이게 이렇고 저게 저러니깐 이럴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논리를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단기로 접근할수록 전망의 적중이 어렵고, 도리어 시간 축을 좀 길게 잡으면 거시적 요인에 따른 전망이 얼추 맞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말하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내게 나름 잘 맞는 일이라고 느껴서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다.

4. 외환 거래 / 환포지션·환손익 관리

-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FX 거래를 하고, 외환포지션과 환손익을 관리한지도 벌써 8개월차다. 지금까지 보통 하루에 몇십억원~몇백억원 규모의 외화를 사고 팔고 있다. (어차피 은행연합회 등의 전산을 통해서 다 공개되는 정보인 마당에 구체적인 숫자를 숨길 이유는 없지만) 아직까지도 외환시장의 생리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주식시장과 달리 실제 외환시장의 직접적인 참여자인 은행의 FX딜러에 비해 접근 가능한 실시간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여러모로 힘들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1,153.2원에 1개 sell 접수하겠습니다."라는 말 속의 1개가 원화 환산 11억원이 훌쩍넘는 1백만불이란 것도, 이따금씩 마주하는 '1장(1억불)'이라는 외환시장에서의 거래단위도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수십번 다시 태어나도 월급으론 모을 수 없는 돈의 단위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설 때가 있다. 몇년 전에 처음으로 이 업무의 부담당자로서 5백만불을 시장에 처음으로 직접 팔았던 때의 그 전율도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렇게 무뎌진다는 것이 때론 참 무섭다. 늘 접하는 연합인포맥스 외환 시황 기사에는 '수출업체의 네고물량이 환율의 상단을 제한했다'란 일종의 cliche가 된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여러 수출업체 중 하나의 담당자로서 적지 않은 거래물량을 갖고 환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와 같은 것들로 가득 채운 2021년도 벌써 8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사계절을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이제 따뜻하고 더운 절기는 서서히 가고 시원하면서도 추운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변화 자체는 늘 두렵지만, 계절의 변화는 우리네 삶의 역동성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좋다. 또 내 앞에 잔뜩 쌓여있는 회사에서의 과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지나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추운 겨울이 되어 있겠지. 나는 추운 겨울을 맞을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걸까. 혹자에게는 매일 음악 공부를 한답시고 깝죽대는 베짱이로 보이지는 않을까.

드라마 Game of Thrones에서 북부의 지배가문인 스타크 가문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그 말처럼, 정말 그러하다. "Winter is coming."

p.s. 이미 자정이 지나버렸지만- 지나간 일요일은 광복절이었고, 천주교 전례력으로는 성모승천대축일이었고,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독산동 신여사님의 61번째 음력 탄신일이었다. 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사람 구실할 수 있도록 사랑과 정성을 듬뿍 쏟아주신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노라 이 곳에 소심하게 기록을 남겨본다. 애석하게도 손주 구경은 시간이 꽤 걸릴듯 함에 양해를 구한다.

89년 이맘 때, 엄마와 나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