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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대학생, 2006~2008

아프간 인질 석방.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

by hyperblue 2007.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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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길고 긴 탈레반과의 줄다리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아니, 사실상 끝났다. 방금 전에 생존한 인질들이 모두 석방되었다는 속보가 TV와 인터넷뉴스 등을 통해 타전됐다.

  일단 기뻤다. 사람 목숨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것. 비록 모두가 살아나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 무엇이 남은 것일까. 이들도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에 꽃목걸이 목에 걸며 금의환향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소중한 목숨 살렸네'하고 끝내기엔 여론이 만만치가 않다.

  일단, 이번 사건은 개신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증폭된 반감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몇몇 개신교 단체에서 그동안 일삼아온 무분별한 선교활동에 여러 사람이 거부감을 느껴왔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에 '이를 바득바득 갈던' 사람들이 물 만난 고기들처럼 모두 인터넷에서 그 분노를 쏟아낸 것이다. 특히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댓글싸움에서 일반적, 논리적 사고를 다른 곳에 놓고 와서 오직 '하나님'과 그들의 가치관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던 광신도들이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근데 참 신기한 것은 언론에서는 이런 인터넷의 여론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는 점이다. 내가 TV를 잘 안봐서인지......뭐 기자가 잠시나마 '그런 의견도 있습디다'라고 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인터넷 상의 뜨거운 여론에 대해선 전혀 다뤄진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나다를까 여기에 분개한 많은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키보드로 언론을 비판하고 있지만, 당연히 넷상에서의 외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앵커가 '악플'에 대해 언급하며 자제해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자주 본 것 같다. 이런 것이 상당히 역겹게 다가왔다. 이 부분은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조금 전 TV 뉴스에서 인질 석방소식을 전하며 그들 한 명, 한 명 프로필을 소개할 때는 "어라? 왜 저럴까..." 이 말 밖에 안나왔다. 마치 그들이 모두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춰주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았다는 말이다.(이걸 설마..'시기'라고 몰아붙이는 사람이 있다다면 할 말 없음;)

  석방 조건에는 '선교활동 중지'가 명시되어 있다. '순수한 봉사활동'이라며 이들을 옹호하던 몇몇 사람들은 이제 그 분노의 키보드질을 멈춰야한다. 석방 조건에는 그 외에도 우리나라 군대의 연내 철수 등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 부분들이 명시되어 있지만, 과연 그게 다 일까? 분위기를 볼 때, 모두가 다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분명히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혈세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댓글이 속보 이후 여기저기에 범람하고 있다. 참 잔인한 면이 있지만, 난 심정적으로는 이 말에 동의한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에 폐(?)를 끼친 것은 사실 아닌가.(분명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 아니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했다는 점 또한 자명하다.)

  또한, 얼마 전에 해결 된(맞나?) 동원호 피랍사건의 경우와 아프간 피랍사건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생계와 관련한 일을 하다가 피랍된 사람들이었고, 후자는 가지말라고 말려도 뿌리치고 간 종교 혹은 봉사단체였다. 이런 가운데 언론과 정부는 동원호 사건에는 거의 침묵하다시피하고, 오직 아프간 피랍사건에만 온 힘을 쏟고 스팟라잇을 비춰주었으니 뭇 사람들에겐 기가 막혔을 법한 상황이다.

  말이 자꾸 길어지지만, 일단 우리는 사지에서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다가 살아돌아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어찌되었든 그들은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며 말 못할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이미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릴 이들에게 또 많은 사람들이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정말 할 짓이 못되는 것 같다. 아니꼬워도 최소한 집요한 인신공격은 모두가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일로 도마에 오른 개신교계 또한 이 사건을 국민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만과 교만의 종교', '개독교' 등으로 매도하며 공격을 했을까. 난 천주교 신자인데 어렸을 적에 한 친구가 "우리 교회 목사님이 그랬는데.....(blah blah).....성당은 사이비잖아." 이렇게 말해서 참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일부 개신교 단체가 드러내는 타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멸시와 물불안가리는 선교활동은 더 계속되면 더욱 큰 화를 부를 것이다.

"성경에는....(blah blah)...때문에 오직 신은 하나님 뿐이고, 우리는 선교가 의무입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근데 당신네들은 유두리도 없나? 대놓고 저런식으로 나오면 외부의 그 누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까? 아, 모르겠다. 가까운 일례로,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교회에서 세뇌를 당하다시피한 가까운 친척 한 분하고 얘기해보면 그냥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더라. 명절 때 마다 또 종교얘기, 교회얘기 나올까봐 조마조마하다.

  종교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다.친구 사이를 갈라놓으며, 가족, 친지 사이의 연을 끊게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국가 간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린 지금까지 CNN과 같은 언론을 통해 늘 live로 시청해왔다. '한 인간의 신념'이라는 종교의 성격을 놓고 볼 때, '개종하겠다', '포교하겠다'라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무서운 일인가를 모두가 알고 앞으로도 이 부분에 신경썼으면 한다. 이 모든걸 인지하고 덤벼들겠다면 제발, 다른 이들에게 피해는 주지말자.

  삼천포로 마구마구 샜지만, 아무쪼록 아직도 피랍 상태에 있는 모두가 무사귀환하여 몸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하고, 이 사건으로 인한 후속 문제들 또한 정부와 종교계에서 대충 넘길 것이 아니라 본보기로써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줬으면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을 때 매정해보일지 몰라도 정부에서 제반 비용을 청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우리 정부도 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샘물 교회 측에 일종의 구상권을 행사하면 어떨까...싶다.)

※ 제가 속보를 보자마자 바로 글을 쓰느라 그냥 '석방'이란 표현을 마구 사용했는데, 글을 수정하는 지금 이 시점까지는 실제로 탈레반 측으로부터 풀려나지 않았으니 오해가 있을 수 있군요,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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