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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 의무경찰/의경 블루스

9. 그 많던 '닭장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의경블루스 - 9] 그 많던 '닭장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울광장 옆.

서울시내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경찰버스. 사람들은 '전경버스', '닭장차' 등으로 많이 부른다. 하지만 요즘에는 '닭장차'를 찾기 힘들 것이다. 아니, '닭장차'는 더 이상 없다. 대신 왼쪽과 같이 새것으로 보이는 깔끔한 버스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이렇기 때문인지 몇몇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경찰청에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닭장차를 죄다 새것으로 바꾸었다'라는 루머이다. 뭐, 관심도 별로 없고, 생각 없는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을 하겠지만, 이렇게 버스들이 하나하나씩 교체되던 과도기에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또, 약간의 '두근거림'도 있었다.

'우리 부대 버스도 곧 바뀌는 건가?!'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니, 역시나 그랬다. 일단, 저 깔끔한 버스들은 거의 다 '도색된' 차량이다. 물론, 새것으로 교체된 버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이 도색된 것이었다. 아래에 볼 수 있듯이 경찰청의 계획에 따라 전국 모든 경력수송버스의 도색이 이루어졌다. 내가 짬밥이 안됐기 때문일까..한창 광화문과 종로로 출동을 나가던 시절 꿈꿨던 '신형 버스의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촛불시위 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봐오던 오른쪽과 같은 닭장차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내가 부대에 전입한 2008년 8월 초에는 모든 버스들이 다 이러한 형태였다. 우리 부대의 버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 닭장차 안에서 바깥세상을, 두꺼운 철망이 달린 창을 통해 힐끗힐끗 봐야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촛불시위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우리 부대 버스도 철망을 벗었다. 어찌나 무겁던지, 운전대원이던 고참의 명령에 따라 그 쇳덩이를 떼어서 나르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더 열받는 사실은, 그런 상태로 있다가 또 큰 시위가 있으면 철망을 옮겨와서 다시 부착했다는 것. 정말 말그대로 짜증났다. 그러던 때에 갑자기 방송뉴스와 신문 등에 경찰버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동아일보기사 링크 : 경찰버스, 철망 대신 쇠파이프 견디는 ´PC창문´ 교체

두꺼운 철망이 없어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닭장차라는 오명 탈피 및 대민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존의 철망을 제거하고 위와 같은 특수 창문으로 교체한 것이다. 근데, 난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있다. '왜 모든 부대의 버스에 적용하지 않았나'하는 점이다. 이런 창문교체는 시위진압전담인 기동대와 전투경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속한 방범순찰대는 아직도 그냥 일반버스와 같은 유리창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찌보면 일의 순서를 따졌을 때 당연한 일이다. 방범순찰대 보다는 기동대와 전경대가 집회관리 및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빈도나 정도가 높기 때문에 우선적인 교체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일부 부대의 경우, 1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그대로라는 것이다. 철망을 제거한 뒤 아직도 '강화창문'으로 교체되지 않았다. 그냥 일반버스와 같은 유리창에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선팅만 되어 있는 상태이다. 우리부대 버스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평택쌍용차공장 지원 때, 우리부대 버스.


현재 서울시내의 방범순찰대 중에는 위와 같은 상태로 운행되는 버스가 많다. 강화창문으로 교체된 버스가 있어도 부대의 버스 3대중에 일부만 그러한 경우가 많다.(c.f. 일반적인 의경중대는 출동시에 3개 소대로 운용되며, 각 소대가 1대의 버스에 나눠 탑승한다.)

난 굉장히 황당했다. 내가 지금도 타는 이 버스는 돌이나 기타 시위용품, 화염병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어떠한 자기방어기제도 갖추지 않았다. 물론, 요즘의 시위양상을 볼 때, 화염병이나 기타 극렬시위용품이 쉽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 정말 최악의 경우, 철야근무를 위해 정차되어 있는 경찰버스에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창문 안쪽으로 인화성 물질을 투척하면 부대원 모두가 다 죽을 수 있다.

특히 2009년 여름, 용산참사의 후폭풍으로 참사현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근무를 하며 밤을 지새울 때 나는 이런 위협을 많이 느꼈다. 여름에는 너무나 덥기 때문에 버스의 창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철야하는 경우가 많다. 에어컨이 있지만, 주민들의 민원문제가 있기 때문에 항상 틀어놓고 있을 수가 없다. 고로,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조금이나마 열어야 한다. 모든 소대원이 다 자고, 나 혼자 버스에 깨어있을 때, 버스 옆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었다. 차라리 철망이 있는 기존의 '닭장차'였다면, 이런 안전문제에 대한 걱정은 좀 덜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찰의 이미지 제고'라는 명목 하에 전의경들의 생명을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악감정이 충분히 고조되어 있었으므로, 더더욱 그랬다. 윗분들이 이 글을 볼리는 없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버스를 타고 군생활을 오랫동안 해나가야할 내 후임들을 위해서라도 제발 미교체된 버스들에 대해서도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일반시민들에게 버스는 단순한 운송수단이겠지만, 우리 전의경들에게는 이 버스는 '또 하나의 집'이다. 출동 시에 부대의 이동을 비롯한 숙식 등이 모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로와 광화문 등지에서 철제 식판을 들고 있거나 도시락을 집단배식중인 전의경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식사는 모두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기본적인 휴식도 마찬가지이다. 창문이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잠을 자면서 근무의 피로를 푸는 것도 모두 이 버스 안이다. 철야를 하면서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시위시즌에는 부대보다 이 버스 안에서 더 오래있게 된다.

평택쌍용차공장 지원 때, 우리소대 버스 안.


우리소대 '닭장차'의 내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버스에는 하이바와 방패, 진압봉, 방독면을 비롯한 부대의 모든 진압용품이 있고, 우리의 땀냄새와 숨결이 배어있다. 예전에는 가혹행위도 이 버스 안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아무래도..이 폐쇄적인 공간에 20명 남짓한 남자들끼리 부대끼다보면..여러가지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아, 또 이 경찰버스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바로 '차벽'기능이다. 말그대로 '차로 만든 벽'이다. 수많은 시위대를 수적으로 열세인 전의경진압부대가 몸으로 다 막아낼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술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이 버스이다. 말 그대로 '벽'이 되어 시위대의 진로를 차단하는데 유용한 기능을 한다. 이런 차벽기능 때문에 경찰버스에 구조적으로 특별히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비상문'이다. 이 비상문은 버스 가장 뒷좌석 왼편에 일반 승용차처럼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평소에는 전혀 쓰지 않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차벽으로 쓰이던 버스가 고립되어 앞과 중간에 위치한 일반적인 출입문이 봉쇄된 경우 비상탈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故노무현前대통령 추모'때의 차벽은 촛불시위나 여타 큰 시위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 촘촘함과 정교함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하는 이 버스를 대부분의 시민들은 애물단지로 취급하며 온갖 민원을 제기한다. '시위가 없는 때에도 종로와 광화문에 늘상있는 전경버스들이 교통불편을 야기하며 흉물스럽다.'라는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종로와 광화문에는 미대사관과 청와대길목 등 경찰이 365일 24시간 단 한시도 그 자리를 비우면 안되는 곳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에는 언제나 전의경이 있다. 버스는 이런 많은 부대들의 운송수단이자 유일한 휴식처인데,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책없이 무조건 '까기'만 하는 시민들을 보면 좀 많이 야속하다. 당연히 매연과 같이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면 안되나 싶다. 아직까지는 전의경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서인지 이 버스 밖을 나서면 난 항상 긴장하게 된다. 나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군복무를 하는 것인데, 시민들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현실이 괜시리 서글플 때도 많다.

어쨌든, 경찰버스는 나에게 있어 악몽이요, 추억이요, 내 군생활의 모든 것이다. 이 버스 없이는 의경생활을 논할 수도 없다. 부디 앞으로는 아래와 같은 경찰버스들이 더 이상 없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촛불시위의 희생양.



전의경들에게는 '경찰버스'나 '전경버스'보다는 그것을 뜻하는 무전음어인 '기X마'라는 호칭이 더 친숙한 이것. 경찰청에서는 하루빨리 모든 부대의 버스를 개선해서 전의경들의 안전을 비롯한 제반 문제에 신경을 좀 더 써줬으면 좋겠다.

p.s. 서울의 경우, 전의경중대의 버스는 대부분 직원(간부)이 아닌 대원(병사)이 운행한다. 부대에서 '1종 보통 면허취득이 1년 이상'인 대원들을 자체적으로 뽑아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운전교육대에서 입교시킨 후, 소정의 운전교육을 이수하게끔 하고, 1종 대형면허를 취득한 후(물론, 공짜) 부대로 돌아온 대원들을 운전대원으로 운용한다. 지방은 직원들이 한다고 알고 있는데, 요즘에 '운전특기병'을 입대 전에 따로 뽑는 것 같아서 어떻게 될지 잘은 모르겠다.
  • 오오 2010.03.06 0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부분 기응응(-_-;) 뒷문 계단 구석진곳을보면 예전의 흔적들이 남아있죠. 초록색이...
    어이구 저거 진짜 많이 뿌셔졌네요 ㅉㅉ... 저희도 대전청 지원가서 도망만가다가 상황끝나고 버스 돌아와 보니 유리창이 다 가루가..... ㅋㅋㅋㅋ 그 덕에 관광버스 대절해서 타고왔는데.. 완진가방이랑 하이바랑 자잘한 짐들 다 옮기고..(그때 비 엄청왔는데...) 덕분에 고생 엄청했네요.

    아... 저거슨... 평택... 저 송탄톨게이트 지나가면 어김없이 들리던 챙의 목소리...

    기상!!!
    기상하시랍니다(우어...)
    긴장해.
    긴장하시랍니다(아아아ㅏ아앙아아앙앙라....)


    쌍용때 공장가면 전국의 경찰버스를 다 볼수 있었죠 ^^

    • 쌍용.....우리 중대는 한 3~4번갔나? 몇번 안가긴 했지만, 날도 덥고해서 아주 최악이었음. 부산, 대구중대까지 다 보이니깐 서로들 구경하느라 신기하긴했어요.

      우린 평택 오갈 때 절대 못자게 했어요. 뭐..열외는 알아서 했지만, 장거리 출동이라고 중대장님이 특별히 긴장하라고 해서 애들이 앉아서 꼬박꼬박 졸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네요.

  • 2006co 2010.03.08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 8월에 전역했는데요. 5월인가....대전 화물연대 집회때 수많은 버스들이 아작 났던거 기억나네요. 버스에서 도시락까먹고 만화책보며 노가리 까다가 오후 늦게 갑자기 하차했는데...
    글쎄 일렬로 서있는 수십대의 버스들....모두 유리창 아작....지휘차량도 아작....
    정말 그렇게 처참한 광경은 군생활 중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버스 중에 창문이 파란색이면서 플라스틱 재질처럼 보이는 ..그 버스 창문은 멀쩡하더군요. 뭐 강화플라스틱인가...
    암튼 그떄 검거하네 어쩌네 쌩쑈하면서 뛰어댕기고... 고생 많이했어요. 몇년 만에 시위자들이 죽봉을 사용했다는 집회였지요. 그때 서울 중대 한 의경은 죽봉에 눈을 다치는 사고까지있었다고... 아직 복무하고계신 전의경 분들 몸 안 다치고 무사히 제대 하시길 바랍니다.

    • 대전 화물연대사태를 말씀하시는군요..서울에서도 여러중대가 많이 내려갔는데 저희 중대는 운좋게 안갔습니다. 기동대를 비롯해서 옆동네 방순대도 끌려가서 줄줄이 깨지고 박살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대전 현장지휘부가 어리버리까서 다 털렸다던데, 어찌됐든 경력수송버스 창문은 안전을 위해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전역의 그 날이 쉽사리 오진 않네요ㅠㅜ

  • 방순대 2010.03.10 0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전 화물연대.... ㅎㄷㄷ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ㅋ
    저희부대가 마침 충북에 있어서 거의 1순위로 지원을 갔는데.....
    이건 가자마자 지옥을 보는줄 알았습니다.
    대한통운 집하장 가기 5~600M전부터 플랜카드로 길거리에 도배를 해놓고 전국에 있는 기X마가 대략 100~150대정도 쌓여있다고 느껴질만큼 모여있고....
    진짜 대전화물연대때는 제 군생활중에서 몇 안된 생명의 위협을 느낌 상황이였네요.

    의외로 평택때는 제가 외박이랑 특박타수를 신기하게도 평택상황나가기 전날에 짜놓아서 힘들때는 모두 빠지고 거의 마무리단계때랑 농성 마지막날까지 3번정도 간걸로 기억하네요ㅎ

    몸 건강히 전역하세요^^

  • 5기동단 2010.03.11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정936기 의경895기입니다. 블로그 정리를 잘 해놓으셨네요. 덕분에 소중한 추억 즐겁게 되새겨밨습니다. 저도 군대있을때 해볼까했었는데 귀찮아서 말았다죠. ㅋㅋ 저희중대도 강화유리가 부착됐었는데 진짜 좋았었죠ㅋㅋ 근데 창문이 안 열려서 여름에 에어컨 고장난상태로 출동나갔다가 찜질한번 제대로한 기억이 ㅋㅋ 하필 완진까지 착용하라니...암튼 요즘 큰상황은 없는거같은데 혹시나 조심하시고 얼마 안 남은 군생활 잘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

    • 오~ 895기이시군요! 저희 중대 예~전 기율이 895기였습니다. 천사기율이어서 참 좋았는데ㅎ

      버스 강화유리..근데 이상하게 기동대 친구들중엔 별로라는 소리도 많더라구요. 뭐, 그래도 안전문제상 있는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는..

      아시다시피 요즘엔 서울에 큰 상황이 없어서 살만합니다. 근데, 슬슬 G20 입질이 와서 그런지 청에서 훈련을 빡세게 돌리기 시작하네요...저도 G20이랑은 상관없는 기수인데ㅠㅜ

      댓글 감사하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빕니다!^-^

  • 천스물 2010.03.11 2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6년입대..88년전역 가장 험란했던 시기에 서울기동대로 배치받아 좋은 꼴 많이보고 전역했죠..

    이런 전의경 블로그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어디가나 귀하니...;;

    좋은 밤되세요~~

    • 격동의 시절에 힘든 군생활 하셨겠네요..제가 87년생이니.........우오오오

      꽃샘추위가 격해서 저는 어제 하루종일 훈련하면서 덜덜 떨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작년 12월부터는 에어서스펜션을 장착한 관광버스형의 대우 FX116 6대와 초저상버스 BS120CN 3대가 경력수송버스로 납품되어 서울 일부 상설부대에 배치/운용중입니다. 시범 운용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고급차들이 많이 배치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 전문가...이시군요? 이쪽 업계(?)에서 일하시나봐요~ 정보감사드립니다.

      저희 방순대(서울) 버스는...그 기아꺼 AM뭐시기인데, 운전대원인 후임말로는 올해로 10년차인가?그렇다네요. 서울시내 전의경중대 버스 중에 가장 고물이라던데-_-;

      뭐 제아무리 고급차가 배치된다고 해도..
      이젠 저랑 상관없네요 :)

  • 앗싸리37중대 2010.04.14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읽고갑니다..

    포스터보니..이거는 무슨 카드회사 실적 유치홍보같은느낌이네요^^

    전 900기 의경기수 859기수(2006년 03월 입대 및 2008년 2월 전역자)^^군복무 3일단축혜택자^^

    글 잘읽고갑니다

    지금도 경찰버스기대마를 보면 뭔가 아쉽고 허전합니다..차라리 그 예전에 철망달던 버스가 새록새록 나네요 저때는 철망기대마로 다녔거든요,독일월드컵떄 아마 한달동안은 철망뺴고다녔음
    그러다가 포항포스코집회때 바로 포항으로 달려가서 철망 새벽시간에 달았고..^^ 힘내요

    • 제가 자대에 배치됐을 때, 연가복귀해서 제대를 기다리고 있던 기수가 의경기수 870k(행정 911k)였을 겁니다. 정말 하늘보다 높아보였는데....

      외관상 조금..그래보여도, 저도 옛날 철창이 훨씬 정겹고 좋습니다. 말그대로 닭장차여도 나름의 긴장감도 생기고 그랬는데, 요즘엔 뭐......관광버스와 다를바가 없음.

      고생 많이하셨네요, 요즘 37중대는 경력일보보면 정X삼 격대인데~ 수고많으셨습니다!^^

  • 기동대전역자 2010.08.28 1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철망이 왜 없어졌나면요. 말씀하신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촛불시위때 저 철망을 뜯어서 철망으로 유리창을 깨거나 의경을 철망으로 쭈셨거던요.
    대표적인 장소로는 안국로타리랑 세종로 골목, 세종로였습니다.
    그래서 철망을 뜯어버리고 강화유리로 바꾸었습죠.

    • 역시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촛불 끝물에 자대에 들어가서 뻗치기만 지겹게 섰던 기억이 나는데, 중대 고참들은 새문안 교회 등지에서 고생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안국R을 비롯한 곳곳이 저한텐 정겹게 다가오네요.

  • 글 잘 읽고가요. 서울은 서울지방청에서 운전교육을 실시하나보군요.
    저는 전남권에서 지내고 있는데 같은 경우는 경찰학교에서 대형면허 따가지고 왔습니다.
    근데 아직 상경 ;;

  • 비밀댓글입니다

  • 평택쌍용차 보니까 갑자기 막내때 생각나네요...ㅋㅋㅋ
    중대 캐막이였는데 저땝 죽는줄 알앗네 ㅋㅋㅋ

    • 저는 저 때 소대 쓰리고인가? 나름 소대열외라서 괜찮긴했는데 근무 자체가 엿같아서 몇 번 가진 않았지만 갈 때 마다 짜증났던 기억이 나네요..

  • 항해사 2012.10.03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차벽을 정교함과 촘촘함이라고 설명햇나??? 너무 고맙네 ㅋㅋㅋㅋㅋ 그 차벽을 설치했던 불쌍한 항해사의 일원으로써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