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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 의무경찰/의경 블루스

10.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

by hyperblue 2010. 3. 16.



[의경블루스 - 10]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



보는 이를 소름끼치게 만드는 한 장의 그림. 광화문 광장 쪽 대로 쪽에서 바라보는 미대사관 근무중대 경찰버스의 배치 모습이다.(물론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버스가 주차된다.) 그림 좌측(북측)엔 미대사관, 사진의 가운데에 보이는 종로소방서, 그림 우측(남측)에는 KT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림에 보이지 않는 왼쪽 미대사관 본 건물 외벽주위에는 전의경들이 코너마다,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곳은 서울의 전의경이 마주하는 가장 최악의 근무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65일 24시간, 단 1초도 경비경찰이 자리를 비우면 안되는 곳. 요즘에는 '전담중대' 개념이 생겨서 모든 상설진압중대가 골고루 돌아가면서 근무를 하지는 않는다. 청에서 지정한 기동대와 전경대 몇개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서는게 요즘의 패턴.('시설전담'의 개념에 대해서는 추후에 소개)

내 기억에는 작년에 주상용 前 서울청장님이 부임하면서 근무가 위와 같이 전담 개념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중요한 경비근무지인만큼 중대를 몇개 지정해 근무돌려서 그들의 현장대응역량을 강화하는게 낫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서울의 상설중대가 모두 돌아가면서 시설경비를 했더랬다.

그렇게 서울 모든 상설중대가 돌아가면서 근무를 설 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찾아왔다.

2008년 12월 말, 크리스마스 즈음의 유난히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재수없게도 미대사관 철야가 걸렸다. 복장은 근무복. 짬밥은 안될 때 였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고참들 몰래 양말을 여러겹 신었다. 그렇게 근무지에 배치됐다. 그 날 나의 두번째 근무였나? 새벽 2시~4시, 대로를 바라보고 부동자세로 홀로 앞을 뚫고 근무에 임했다. 광활한 광화문 벌판의 미친듯한 칼바람이 엄습했다. 목토시로 아무리 얼굴을 가리려고 노력해도 눈에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콧물도 마구 흘렀다. 너무 추워서 손을 움직여 닦을 엄두도 안났다. 발은 깨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추위가 아니라 통증 수준이었다. 얼어버린 얇은 경찰단화 가죽을 뚫고, 한기가 마구 들어왔다. 양말을 여러겹 신은게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감각도 없어지고 너무 아팠다. 왜 이런날 얇은 경찰단화를 신고 근무를 하게 했는지 상부가 야속했다. 하긴, 밖에서 실제로 근무를 서지 않는 그들이 이런걸 신경이나 쓸까. 길 건너편에 보이는 세종문화회관 전광판 시계를 아무리 쳐다봐도 1분, 1분이 힘겹게 흘러갔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생각하면서 오만 생각을 다 하며 2시간을 버티다보니 어느덧 근무교대시간. 추워서 졸 수도 없었다. 졸다가 정신잃으면 죽겠구나 싶어서 정신은 깨어 있었다. 다시 버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살아있는지 자가점검을 하자 코와 입을 덮고 있던 검은 목토시 쪽에 콧물과 입김이 고드름이 되어 맺혀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죽어도 잊지못할 한겨울 미대사관 철야의 악몽.

전방의 육군이야 오죽하겠냐만은, 혹한기 미대사관 철야근무는 서울의 전의경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근무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새벽 한가운데 근무를 서야하는 짬밥안되는 쫄병급이라면 더더욱.

지금 이 시간도 열심히 미대사관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미외교의 최전방을 수비한다고 생각하면 아무 이유없다고 느껴지는 이 근무도 조금은 할만하다.

아래는 엊그제 광화문에서 철야를 하고나서 이른 아침에 찍은 사진. 맨 위의 그 종로소방서가 우뚝 서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경찰버스가 우리중대의 버스였다. 근무는 미대사관 시설경비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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