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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수험생, 2010~2012

영광스러운 전역, 그리고 새로운 출발!

by hyperblue 2010. 5. 12.


아침 8시, 단잠에서 깨어나 잘 먹지도 않던 아침짬밥을 먹으러 취사반으로 내려갔다. 평소와는 다르게 꿀맛이었다. '마지막 짬밥 맛있게 드십쇼!'라고 웃으며 말을 거는 취사반 후임이 고마워서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단화를 질질 끌며 내무실로 다시 올라가서 이제 더이상은 입을 일이 없을 경찰근무복을 마지막으로 차려입었다. 여섯명의 부대동기가 함께 모여 경비계로 향했다.

제대휴가 나오는 날까지 두발상태가 불량하다며 휴가증을 안주고 애먹였던 전경관리반장님도 오늘은 말없이 수고했다며 전역증과 자그마한 전역 선물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셨다. 그렇게 싫어했던 경비과장님께서도 밖에 가서도 하는 일 모두 다 잘 되고 건강하길 빈다며 한 명씩 악수로 전역을 축하, 격려해주셨다.

눈물의 전역증 :)


아, 난 왜 눈물이 이리 많은걸까.
밖으로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전역증을 손에 쥐며 자세히 보자마자 마음 속에선 갑자기 울컥했다. 저 조그마한 증서 하나를 얻기 위해 지난 2년간 내가 겪은 여러 고통과 눈물의 시간, 기쁨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2년 전 이맘 때, 내 마음은 혼돈 그 자체였다. 광우병 미국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로 서울시내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의경들은 근근히 시위대와 대치하며 중간에서 온갖 생고생을 다 하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시국에 서울에서 의경생활을 하겠다며 자원입대하려는 나를 불효자라고 하셨고, 결국 내 고집을 꺾진 못한채 논산육군훈련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손을 꼭 잡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셨을 뿐이셨다.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큰 불효를 행했다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지금도 참 죄송스럽지만, 어쨌든 난 이렇게 다치지 않고 몸 건강히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

자대배치 1주일 전에 의경기본훈련을 받는 서울지방경찰청 신병교육대에서는 우리를 훈련하는데 전념해야 할 조교들마저 시위진압에 동원되어야 한다며 저녁 때 간간히 서울시내 어딘가로 달려나가곤 했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하늘이 도왔던 것인지 2008년 8월 초인 그 때는 시위가 한풀 꺾여 진정국면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렇게 난 서울중대에서의 의경생활을 시작했다. 관내 방범근무를 나가서 의경 예비역이라는 아버지뻘 아저씨들한테 용돈도 몇번 받아봤고, 아들이 전경이라는 아주머니께서 먹을 것을 사주기도 하셨다. 크고 작은 시위현장에 서면 난 언제나 '전경 개새끼'였지만, 적어도 방범근무, 교통근무를 할 때는 민생치안에 일조하는 자랑스러운 군인이고 의경이였다.

2009년이 밝자 내 군생활의 1/2가량을 채운 빅이벤트가 찾아왔나니- 이름하야 '용산참사'. 추운겨울에는 집회가 뜸해서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두꺼운 완전진압복을 껴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광화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제2의 촛불집회'서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거기까진 가지 않았고, 보통 용산 안에서 힘든 근무로 근 1년이 좀 안되는 시간동안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항상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용산참사의 여파로 실컷 고생하던 와중에 있던 촛불집회 1주년 기념 대규모 집회, 김대중 前 대통령,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남을 빅이벤트의 한가운데에도 나는 있었다. 방패를 들고 광화문 곳곳을 날아다니며 노무현 前 대통령님의 운구행렬을 바로 뒤에 등지고 있기도 했다. 정말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앞에 있던 시민은 내게 욕을 하기도 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서서 명령받은대로 로보트 마냥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예인 구경도 실컷했다. 소녀시대, 카라 등 굳이 찾아가서 보지 않으면 보지 못할 아이돌 연예인들을 경호, 혼잡경비 한답시고 바로 옆에서 실컷 봤고, 강남에 위치한 우리 경찰서의 특성 때문에 관내에서 심야음주단속을 하며 TV에서나 보던 연예인들의 음주측정을 하다가 속으로 신기해하던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365일 늘 있는 자잘자잘한 소규모 집회에서 가지지 못한 자의 한맺힌 절규를 들었고, 가진 자의 횡포도 보았다. 난 군생활을 하며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싸움을 그들의 전쟁터에서 직접 경험했다. 보통 나는 가진 자의 편에서 약자들을 막아냈지만, 이런 경험은 내가 의경이 아니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고참들의 갈굼 속에서 '확 뛰어내릴까' 싶었던 적도 많았고, 내가 겪은 설움을 겪지 않게 하려고 후임들을 혼내다가도 친동생처럼 토닥여주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난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대휴가 복귀일 밤, 소대원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다음 날 제대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 명씩 했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내게 '그동안 봐왔던 고참 중에 최고'였다며, '조금만 함께 더 하자'며 울먹이는 몇몇 후임들을, 이젠 동생인 그들을 보는데 아쉬움과 미안함, 고마움의 감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어쨌든, 난 길고긴 2년의 터널을 뚫고 세상으로 나왔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더 이상 안에서 잘 일이 없는 정든 경찰서와도 안녕- 365일 24시간 경찰서 정문을 열심히 지키는 타격대 아저씨와도 가벼운 목례를 하며 안녕-

새로 태어났다. 햇살도 나의 새출발을 축하해주는듯 그 어느 때 보다 따사로웠다. 전역증과 예비군훈련 때 신을 워커를 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를 와락 안았다.

이 날 이 때 까지 날 보살펴준 우리 중대의 많은 지휘관분들과 나보다 앞서 제대한 많은 고참들, 나를 옆에서 보필해준 사랑하는 후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너무나 고마웠다는 말을 다시한번 전하고 싶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 누구나 그렇듯이 난 국방의 의무를 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답했고, 이런저런 이유에서 의무경찰을 지원해 자원입대했다. 후회한 적도 많았지만, 난 내게 맡겨진 임무를 그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지금까지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잘 보살펴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이 나라를 보다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회 때문에 우리부대는 출동을 나갔다. 이상하게 밖에 나오니 주위에 지나다니는 경찰버스만 보면 계속 중대명을 보게 되고 애틋한 마음에 괜한 관심을 갖게 된다. 다들 다치지 않고 나처럼 무사히 전역하길 바란다.

의무경찰은 대한민국의 내부를 수호하는 이 나라의, 경찰의 방패같은 조직이다. 개인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볼 때 차츰 없어져야 할 조직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무경찰'이라는 이름이 역사속에서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는 그 날까지 난 뒤에서 수 많은 의경전역자들과 함께 묵묵히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오늘 같은 시간에 각자의 부대에서 전역신고와 함께 전역증을 들고 고향으로 향했을 의무전투경찰순경 909기(행정 950기) 동기들아, 정말 수고 많았다. 다들 성공해서 훗날 사회에서 만나자!

옆집아저씨가 된 소대장님, 그리고 나의 전우, 동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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