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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독후감

금단의 열매는 늘 달콤하기만 할까?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스터 페렐 著>)

by hyperblue 2020. 6. 14.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국내도서
저자 : 에스터 페렐(Esther Perel) / 김하현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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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외도'에 대해 논하는 책이라고 했다. 알고나서 왠지 불편했다. 이 책 역시 한글제목보다 영제(英題)인 'The State of Affairs'가 더 와닿는다. 있어보이게 각색한듯한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한글제목은 덜 19금스럽게 보이려고 애쓴 느낌이다.

책의 무지막지한 두께에 1차로 불편했고, 책이 다루는 주제에 2차로 불편했다. 역시나 외도를 다루는 책답게 예상대로 책의 대부분에 '섹스'라는 단어가 가득했다. 하지만, 평소에 이 단어가 주는 자극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무겁고 씁쓸하게 다가왔다. 무엇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를 약속했으면서도 타인을(동성애자 커플 이야기도 나오기에 타 '이성'으로 국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갈구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주제별로 소개되어 있다. 결혼을 아직 안했지만, 외도의 A부터 Z까지 지독한 간접경험을 한 느낌이다.

서두의 일러두기에는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외도'의 범위 혹은 정의를 말그대로 일러두며 시작한다. 외도를 '아내나 남편이 아닌 상대와 성관계를 갖는 일'에서 더 나아가 '연인관계에서의, 또한 성관계 외의 넓은 의미의 배신'까지 확장하여 사용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저자는 길고도 심오한, 때로는 조용한 카페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오는 외도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방대한 책의 내용을 여기에 모두 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책의 차례를 소개하는 것은 충분히 곱씹을만한 것 같다.

Part 1. 어디까지가 바람입니까 - 새로운 논의를 위한 준비
  - 1장 불륜에 관한 새로운 대화
  - 2장 채팅도 바람일까 - 정의와 경계
  - 3장 요즘 불륜 - 역사와 문화의 맥락

Part 2. 한 사람의 세계가 무너져 내린다 - 배신의 파괴와 여파
  - 4장 왜 그렇게 상처가 되는가
  - 5장 더 나쁜 불륜이 있을까
  - 6장 질투, 에로스의 불꽃
  - 7장 자기 비난이냐 복수냐
  - 8장 숨길 것인가, 고백할 것인가

Part 3.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의미와 동기
  - 9장 행복한데 왜 바람을 피울까 - 깊이 들여다보기
  - 10장 무감각의 해독제 - 금단의 맛
  - 11장 섹스일 뿐인가 - 감정의 문제
  - 12장 외도는 최고의 복수일까 - 불행한 결혼 생활
  - 13장 제삼의 주인공 - 그 또는 그녀의 딜레마

Part 4. 불완전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 - 새로운 사랑의 경계
  - 14장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습니까 - 관계의 진화
  - 15장 폭풍이 지나간 자리 - 불륜의 유산

이 책은 외도의 도덕적/법적 책임이나 그에 대한 판단을 논하지 않는다. 심리치료사인 저자는 자신이 마주했던 수많은 실제 외도사례들을 통해 외도의 의미와 원인, 결과를 사회적/시대적 맥락에서 풀어보려고 노력한다. 그 점이 어찌보면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이따금씩 외도는 필요하다는 얘기인가?'라고 나같이 멍청한 잠정결론을 내릴 뻔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이런 우둔한 독자들의 곡해를 막기 위해 절대 그건 아니라고 중간중간에 강조하는 것이 실소를 자아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혹은 가까운 친구/선후배들과 공유했던 연애담론, 그리고 과거 경험들이 모두 기억속 저편에서 책의 페이지 위로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논쟁적인 주제들이 산재해있었다. 예를 들면, '감정적 교감없는 육체적 외도(ex. 성매매) vs. 육체적 교감없는 감정적 외도(ex. 랜선연애?) 중 어떤 것이 진정한(?) 외도인가 혹은 더 나쁜가' 와 같은 것들. 혹자에게는 시시콜콜한 주제일수도 있지만, 솔로몬이나 황희정승도 대충 다 나쁘다고 얼버무리기 쉬운 주제가 아닐까 싶다.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저자 역시도 그런듯 하다. 결국 이런 주제에는 언제나 등장하는 마법의 답안이 대부분이다. 진리의 사바사(사람 by 사람), 상황 by 상황.

책에서 수 많은 사례를 통해서 던지는 모든 외도의 원인이자 결과는 인격체인 서로가 맺는 관계로 귀결된다. 내가 생각했던 남자의 끓는듯한 성욕때문이 아니었다.

난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외도의 원인을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보통 외도를 감행하는 성별은, 즉 외도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며, 남자의 이상형은 우스갯소리로 '새로운 여자'이다. 교양있는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체인 남자는 종족번식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씨앗을 최대한 많이 퍼뜨리기 위해, 연애/결혼으로 독점적 쌍방관계를 맺기로 사회적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유전자'가 시키는대로 파트너 외의 다른 이성과의 성관계로 귀결되는 외도를 감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나의 생각은 정답이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 위의 논리로는 외도의 주체가 여성인 경우를 설명할 수 없으며, 육체적 관계 외에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외도의 양상 또한 설명할 수 없다. 과연 결혼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제도인지, 서로에 대한 독점적 관계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화두를 던진다.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생각을 이야기 안할 수 없다. 내게 연애/결혼은 두 남녀가 서로에 대해 독점적인 관계임을 사회적으로 선언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호신뢰'라는 멋진 단어가 함께 한다. 하지만, 어떻게/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것일까. 상대방에게 나 외의 많은 이성친구들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상대와 그 이성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 것인가. 가벼운 식사? 술 한잔? 1:1 카톡은? 1:1만남이 아니라 집단이라면 괜찮..?

내 이해가 짧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이런 시도, 상대방과의 독점적 관계를 지켜가기 위해 뭔가를 제한하는 행위 자체가 도리어 외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논거도 굉장히 단순명쾌하다.

'인간은 금지하면 더 하고 싶어한다. 금단의 열매가 더 달다.'

이따금씩 연애할 때 마다 이런 것으로 고민하거나 다투던 과거의 내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무기력해졌다.

저자가 외도의 정의를 폭 넓게 가져가겠다고 서두에 선언하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육체적 외도가 책의 중심이다. 하지만, 저자는 육체적 외도가 우리가 지레짐작하듯 변태성욕이나 정신병적인 성 도착 등이 그 원인이라고 쉽게 결론내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외도의 원인을 이런 식으로 정신과 질환의 일종으로 손쉽게 결론내릴 경우 거기에 가려진 '진짜 원인'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이 부분은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라는 책의 논지와 일맥상통한다. 이 책의 경우에도 외도가 단순히 새로운 이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아닌, 불우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나 커플 관계에서의 본질적인 문제 등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외도의 A부터 Z까지 다루는 책인만큼, 논의는 점점 확장되어 동성커플의 외도, 상호독점적이지 않은 열린 관계, 셋 혹은 넷이서 결혼관계와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부분까지 간다. 하지만, 이 쯤 되니 책의 내용이나 사례가 이해는 되면서도 더 이상 가슴 한 구석을 울리는 느낌이 없다. 내가 다양한 민족과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사는 80년대 후반생 꼰대여서 그럴지도. 하지만, 저자의 논지를 옳게 파악했다면 이것은 내가 멍청하거나 틀려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도에 대한 원인과 그 해결점을 찾아가는 이 모든 것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고 나는 이해했다. 책에 제시된 몇몇 커플의 어찌보면 기상천외한 외도극복법은 절대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보편적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10년, 20년 후에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결국 이성과의 상호독점적인 관계를 바라고, 거기서 오는 행복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뇌리에 맴돌던 것은 결혼한 부부의 성생활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가족끼리 그러는거 아니다', '장모님 딸한테 그러면 안된다'라는 문장들과 '결혼 후에는 이전과 같지 않다'는 몇몇 기혼자 친구들의 푸념이다. 그리고 책에는 이에 대한 원인도 어느 정도 진단하고 있다. 아이의 엄마이자 집안돌봄이인 아내와의 '연애감정'으로 직결되는 성생활이 윤택하려면 그에 대한 서로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지고,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외도를 선택하는 것도, 혹은 일방의 거부로 외도를 방조하는 것도 모두 옳지않다는 결론.

남자와 여자의 성적 취향 혹은 충동에 대해 성별로 손쉽게 '경향성'을 설명하고 믿어왔던 나의, 우리들의 생각도 잘못되었다는 것 또한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남자이고 여자이기 이전에 다같은 인간이며 성별로 나누기에는 다양한 저마다의 욕구와 판타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유교탈레반 국가에서는 익명성의 힘을 빌어서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 정작 면전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서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기 힘든 측면이 있다. 저자의 조언에 충실히 따르자면 내가 차후에 건강한 커플이 되어 연애/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파트너와 솔직하게 많은 것을 논의해야 한다. 결국 외도가 뿌리내리지 않는 건강한 관계는 '소통'이 그 핵심이다.

이 책은 외도를 무조건 나쁘다고 하진 않는다. 외도는 관계악화의 극단적인 결과이기에 외도(그리고 발각)를 통해서 서로 결핍되어 있던 부분을 깨달을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도리어 더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도 한다. 심지어 '외도를 저지른 일방보다 그 사람이 외도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상대방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지는 않을까'라고도 한다. 굉장히 발칙한 의견이지만 일견 수긍하게 되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외도가 관계 속의 결핍에서 오는 것은 자명하므로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에서 나아가 본질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고 노력한다면 최소한 예방은 어느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지나간 연애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이 아팠다. 다음에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더 멋진 모습으로 미래의 연인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도 상대방도 '외도'를 꿈도 꾸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이 책이 일조했으리라 믿는다.

오늘은 외도를(아니 외도의 원인과 결과와 방지법을) 글로 배웠다.

"만국의 인간들이여, 사랑하자!" (feat. 공산당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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