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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회사원, 2014~

어디까지 가야만 하는 걸까

by hyperblue 2022. 4. 5.

나락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락에서 괴로워하며 맷집이 단단해졌다고 착각했을 때가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 멘탈이 좋다고, 긍정적이라고 항상 칭찬 아닌 칭찬을 해준다. 팀장님 마저 '석대리는 항상 긍정적이잖아.'라고 해주신다. 감사하다.

하지만 기계도 그렇듯이 사람에게도 한계란게 있는 것 같다. '오, 여기까지 버틸 수 있어? 그럼 이건 어때?' 하며 내게 절대자가 이벤트를 던져주며 성능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삼재'가 아닐까 해서 찾아봤는데, 미신이라곤 하지만 그 미신마저 조금 공부해보니 현재의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외적 귀인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이것 마저 실패하였고 모든 패인은 나에게서 찾게 되었다. 그 어느 것도, 단 한개도 내 마음처럼 움직이는게 없다.

이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작년 초 부터 나를 괴롭히는 이 극심한 고통과 좌절은 언제까지 나를 가둬둘지 잘 모르겠다. 왠지 이번 웨이브는 이 양상이라면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 회사도, 일상도, 인간관계도. 며칠 전 엄마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고 했다. 열심히 사는 것이 꼭 잘 사는 것이 아님을 모르실 것 같지는 않다.

독서모임에서 다룬 '셀피'라는 책을 토대로 나를 돌아보았다. '자아'란 과연 무엇인지, 내 자아는 언제부터/어디에서부터 이렇게 망가졌는지. 그저 모든 것을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에 맡기고 싶은데, 나는 어딘가로 흘러가는 강물이 아닌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검푸른 폭포수 속에서 서서히 익사하고 있다. 순간에 죽는 것 보다는 서서히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죽어가는 것이 더욱 무섭다.

나에게 기대를 표현했던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 항상 형/동생으로서 정을 나누는 회사 동료들의 분에 넘치는 칭찬과 관심, 사랑에도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에게 나는 분명히 가치와 능력 이상으로 고평가된 사람이고, 일종의 커렉션이 필요하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기에, 혹은 못했기에 너무나도 미안하다. 나는 이런 나의 자아를 아직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세상은 열심히 산 사람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라 똑똑한 이들에게 관대한 것이다. 

나는 지난 30여년간 나름 똑똑한 축에 든다고 착각했던 헛똑똑이였고, 가끔은 역겨운 위선자였다. 자아는 나와 관계를 맺은 타인을 통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게 마주한 나의 자아는 도저히 못나서 봐줄 수가 없다. 나이를 먹고나서 누군가로부터 밀려나는 것만큼 끔찍한 경험이 없는 것 같다. 회사에서 나는 지저분한 환관리를 하는 데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품같은 사람이겠지만, 나는 법인보다는 자연인에게 더 특별한 사람이 되길 갈구했던 것 같다. 이제 그만 다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멘탈싸움에서 끝끝내 승리해서 결국 성공한 소수가 만들어낸 잘못된 신화일뿐이다. 실패는 그저 고통스러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한여름 밤의 꿈이었고, 모래성이었다. 파도 속에 무너져서 떠내려간 모래더미 앞에서 멍하니 울고 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되기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기약도 없는 그 시점을 내가 기다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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