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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cellaneous/대학생, 2006~2008

전의경에게는 인권이 없다. (입대 D-24)

by hyperblue 2008.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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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는 그냥 '시위'로 변모하고 있고('변질'이라는 말을 쓰면 또 우르르 달려들겠지.), '쇠고기 수입 반대'구호는 '이명박 나가죽어라'로 反정부구호로 변해버렸다.

'일단은 듣는척이고 뭐고 개무시로 일관하자'는 이명박 정부와 '우리 말 안듣는 당신같은 대통령 필요없다'라고 으르렁대는 집단 사이에 껴서 진퇴양난의 처지에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요즘 인터넷에서 쉴새없이 입에 오르내리는 '전의경'이다.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합리성'이라는 것을 본래 좀처럼 찾기 힘든 인터넷 게시판 등은 쌍욕과 입에 담기 힘든 문구들로 물들고 있다. 소위 '폭력경찰'로 그들과 대치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그들의 신상정보를 마구 캐내서 유포하고, '이 사람이 시민들을 때렸다'며 마녀사냥식으로 희생양을 재생산하고 있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집단은 모두 인터넷 상으로 '전경'이라고 불리며 '폭력과 오만의 인간 이하 집단'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쌍한 집단'이었다가 그들의 방패와 강경진압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연과 사진이 유포되면서 '에미, 애비도 없는 호로새끼들'로 전락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 대부분은 전경이 아닌 의경이다. 전경은 자의와 상관없이 훈련소에서 차출된 '작전전투경찰순경'의 준말이고, 의경은 자원입대한 '의무전투경찰순경'의 준말이다. 현재 시위진압을 위해 동원된 집단은 대부분 의경이며 일부는 전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쨌든, 대부분의 인터넷 여론이 '전의경 타도'로 흘러가는 시점에서 의경입대를 24일 놔둔 입장에서, 전의경 친구들과 선배들을 둔 입장에서, 그들을 위한 變을 해볼까 한다.

사실, 지금 현역 복무하며 시위진압에 동원된 전의경은 이런 글조차 쓸 시간이 거의 없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시위현장 때문에 그들의 복무 강도는 더욱더 가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에 나선 많은 사람들은 방패와 헬멧, 진압복 등으로 무장한채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전의경을 마치 '체력만땅의 무자비한 몬스터'인양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더운 헬멧과 진압복 속에 비오듯이 흐르는 전의경의 땀과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고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일 모습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하지 도, 상상하려 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에는 전의경이 휘두른 방패에 희생당해 피를 흘리는 어린 여고생, 여대생의 모습, 예비군복을 입고 전의경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살수차의 물에 맞아 실명위기에 있다는 사람의 사연이 빠른 속도로 유포된다. 이 사진은 조금이나마 동정의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 마저 전의경에게 고개를 돌리게 하며 적개심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전의경들은 이런 인터넷 여론 속에서 변호의 기회를 가질 시간도 없이 그저 방패만 들고 살인적인 스케쥴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나름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시위 현장에 나와 정부에 대한 전의를, 그들 앞에 선 전의경에 대한 전의를 불태울 것이다. 하지만 전의경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시간마저 없다. 몇날 몇일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지쳐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의경들은 비무장 시위대를 방패와 군홧발로 제압한다'고 분노한다. 그리고 여러 사진 등에서 드러난 폭력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모든 전의경에 대한 평가절하와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은 일일까.

그들이 '쇠파이프도, 화염병'도 없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그 '비무장 시위대'는 전의경에게 떳떳하기만 할까. 그들중 몇몇도 대치 중인 전의경에게 침을 뱉고 조롱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은 '그들은 극소수일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 법'이라고 한다. 왜 그런 평가 잣대는 전의경에겐 적용되지 않는 걸까. 그들은 생각도, 인권도 존중되지 않는 한낱 군인이니깐?

전의경은 시위진압에 능숙하도록 고도로 훈련된 병력이기 이전에 나와 비슷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시급 몇백원대의 군인이란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방패 등의 진압용구가 쥐어져 있다. 반면에 시위대는 모두들 자랑스럽게 얘기하듯 '비무장'으로 거대한 규모로 다가와서 위협하는데, 그 상황에서 전의경들이 받을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선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것일까.

'비무장인 시위대는 보호장구로 무장한 전의경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이여- 잠시만 입장을 바꿔 자신이 방패를 들고 바로 앞의 전의경 대열 속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정신은 혼미한데 땀은 비오듯이 흐르고 있다. 뒤에서는 '뚫리면 죽는다'고 하는 상관의 명령, 바로 앞에서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를 비롯한 다양한 문구를 하나되어 외치며 그 광경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시위대 사이에서 당신들은 평정을 유지하며 자신들에 대한 위협행위가 펼쳐져도 방패만 들고 묵묵히 서있을 자신이 있는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 힘 없는 여고생, 무기 없는 예비역...'등등의 시위대를 구성한 개개인을 말하기 전에 그 거대한 집단 자체가 코 앞에 서있는 전의경에게는 위협이다. 물론, 이 말이 전의경의 폭력을 정당화, 합리화한다는 것은 아니다.

'난 자신 있다. 난 너희같진 않을꺼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시위대와 대치하는 모든 전의경들 또한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방패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왜 거기에 대해선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공공의 적'을 만들 수록 집단은 단합하기 쉬워진다. 집단 심리적인 측면에서 당연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보다는 바로 앞에서 그들을 가로막는 전의경을 '뿔달린 괴물'로 만들어버리는게 집에서 인터넷만 하던 사람들을 현장으로 끌어내기도, 시위대를 더 불타게 하는 데도 쉬울 것이다.

'너희도 국민의 일원이니 상부에 저항하라'고 남의 일이니 쉽게 말하는 몇몇 사람들에겐 대꾸의 가치가 없다고 본다.

이렇게..전의경은 이번 시위의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되어 가고 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이런 시위 진압을 시급 몇백원의 나 또래 의무병이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경찰이기 이전에 치기 어린 젊은이들이니 더욱더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애초에 징병제 자체가 거의 없으니 이런 시위진압도 일선의 경찰 직원들이 담당한다.

전의경은 참 불쌍한 존재이다. 시위 현장에서 전의경이 사고를 치면 경찰상부조직은 '경찰의 일원이기 이전에 의무병으로 소집된 뭣모르는 젊은이들'로 치부하며 외면하고, 시위대를 비롯한 외부인들은 '폭력경찰의 앞잡이'로 취급한다. 병역 구성상으로도 소수 집단이기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늘 이런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의경제도 폐지'가 이슈화 됐지만, 그들이 빠짐으로서 생기는 인력공백을 현재의 경찰 예산과 인력으로 메꿀 수 없기에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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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항쟁 중 하나인 연대사태에서 죽은 노수석과 이한열 등은 열사로 불리며 민주화의 투사가 되었지만, 종합관 앞에서 돌에 맞아 죽은 김종희 이경 등은 아무도 모르는, 그저 모두에게 잊혀진 여러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잠깐 화제를 돌려,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시위의 방향성 또한 변모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그 어느 나라 경찰이 자국의 국군통수권자가 있는 청와대로 시위대가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시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소수의 집단이기에 더더욱 힘이 없는 전의경. 물리적 폭력사태에 대해서는 가혹한 매질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마녀사냥으로 즉결심판하려는 사람들, 이것을 빌미로 집단 자체를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사람들은 참 야속하기 그지없다.

아마 요즘의 인터넷 여론을 볼 때, 이 글은 '폭력 전의경을 옹호하는 글'로 보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하지만 내가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폭력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다울 수 있는 권리'이다.

쇠고기수입 문제를 시발점으로 민영화, 대운하 등등 더 큰 난제가 산적한 것을 보아하니 내가 입대 후 자대배치를 받는 8월 초 쯤엔 지금 시점에서는 상상도 못할 헬게이트가 열릴 것만 같다.

여러 주변 상황, 복학시기, 경찰조직에 어릴 때 부터 약간의 관심 등이 있었기에 선택하게 된 의경 입대.
요즘 세상 상황 때문에 주변인들은 입대취소를 권유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다. 내가 맞딱드릴 상황과 처지가 벌써부터 측은하게 느껴지기에 미래의 나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화를 내야할 대상도, 시위대가 맞서 싸워야하는 것도 현 정부이다. 전의경이 시위대에게 적개심을 품고, 시위대가 전의경에게 적개심을 품고 서로 'vs 구도'로 가는 것은 정말 '그들의 의도에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독단적 리더쉽의 귀막은 대통령 때문에 전의경으로 복무하는 젊은이들과 무작정 거리에 나온 힘없는 이들이 다 함께 고통받고 있다. 어서 빨리 그들이 귀를 열고 잠시만이라도 '진 척'이라도 했으면 한다.


심신이 지친 상태였든, 어떻든 일부 전의경의 폭력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정의를 위하는 것이든, 어떻든 일부 시위대의 폭력행위 또한 정당화 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집중해야할 것은 말 안듣는 정부 vs 국민 이지, '시위대 vs 전의경'이 아니다.
하루 빨리 사태가 수습되고, 이 험악한 인터넷여론도 좀 가라앉았으면 싶다.

궁극적으로는 '전의경 제도'도 어떤 식으로든 개선되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시위대를 응원하기에,
난 소수라서 더 측은한 현역 전의경들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다.



우스갯소리로 여기저기 들려오는,

"육해공군이 열심히 복무하면 나라를 잘 지키는 것이고,
전의경은 열심히 복무하면 정부의 개가 되는 것이다."

라는 말... 가슴이 아프다.

P.S. 글을 곡해하여 '폭력 전의경에 대한 옹호'혹은 '전의경 폭력행위의 정당화'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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