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경블루스 - 2] 가장 무서운건..바로 주취자.
2008년 말, 아직 내가 일경을 달지 않은 짬찌(짬밥 찌끄레기의 준말, 짬밥을 별로 먹지 않은, 부대생활일수가 적은 이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였을 때였다. 대충 촛불집회의 후폭풍이 조금씩 잠잠해지고나서 자대전입 후 처음으로 방범을 나가기 시작한 즈음.
우리 중대의 경우, 방범근무의 과정은 이러하다.
부대에서 지휘관의 짧은 교양 → 경찰버스(사람들이 '닭장차'라고 부르는)에 탑승 → 경찰서 관내 지구대, 파출소에 하차 → 지구대, 파출소에서의 잠깐 교양 후 근무지로 출발
그렇게 난 여느 때처럼 2인 1조로 고참과 길을 나섰다. 방범은 같이 나가는 고참과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할 수 있고, 답답한 부대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짬밥이 안될 때 특히나 좋아하는 근무이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동안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부대에 복귀했다.
근데, 부대복귀 후 얼굴이 퉁퉁 부은 다른 소대 내 동기. 눈 주변이 구타를 당한듯이 퍼렇게 팬더처럼 멍들어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2인1조 방범순찰 중 술에 떡이 된 주취자를 발견했고, 그 주취자를 지구대에 인계하고 보호조치하는 과정에서 주취자에게 얻어맞았다는 것.
경찰의 최말단계급인 의경이기 때문일까, 주취자도 경찰이 받들어모셔야할 치안서비스의 고객이기 때문일까...흐지부지 그냥 별것 아닌 일처럼 마무리됐다. 어쨌든, 당시의 중대장님은 굉장히 많이 화를 내시긴 했다.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이, 의경이 이렇게 폭행을 당해도 되냐는 것. 나도 화가 많이 났다. 술에는 참 관대한 우리 사회. 강간을 해도, 살인을 해도 취중이였다고하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커지는 것 같다.
방범근무를 하러 지구대에 나가면 온갖 인간군상, 진상들을 다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순찰차를 타고 얼굴에 피칠갑이 된채 역시나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있는 한 젊은이가 수갑이 채워진채 나타났다.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다가 신고가 들어와서 잡혀왔다는데, 정신을 못차리고 지구대에서 잠시 휴식중인 우리들에게 온갖 쌍욕을 해댔다. 그러다가 발길질로 폭력도 행사했는데 역시나 군인인 의경들이 몸으로 막은 후 남는 것은 멍뿐. 기분만 나빠지기 일쑤였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의경들은 주취자를 두려워한다. 가끔 순찰을 돌다보면 "여기 술에 떡이 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좀 해줘요."라며 지나가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한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보통 아무것도 없다. 무전으로 지구대에 연락해서 순찰차를 부르는게 최선의 방법. 가끔 "어떻게 좀 해보라"며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같은 경우 뭣모르고 달려들었다가 봉변당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처치가 곤란한 주취자가 발견됐을 때는 그냥 112에 신고를 하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하고 있어서인지 야간방범을 나가면 무전기에서 주취자 관련 신고가 굉장히 많이 떨어진다.
제발, 술 좀 적당히들 먹었으면 좋겠다.
경찰이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맞고, 주취자 또한 그러한 치안서비스의 소비자인 것은 맞지만 이런 사람들때문에 정작 급히 경찰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 때에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우리가 왜 순찰을 돌다가 술에 취한 사람이 보이면 가끔 다른 길로 돌아가곤 하는지..알랑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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