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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 의무경찰/의경 블루스

4. 전의경중대 '기율경'의 힘과 역할.

by hyperblue 2010. 1. 31.



[의경블루스 - 4] 전의경중대 '기율경'의 힘과 역할.

우리중대 기율완장.

우리나라에는 '완장'과 관련된 말이 참 많다. 보통은 비꼬는게 대부분이다. "한국사람은 완장을 좋아한다.", "한국사람은 완장 채워주면 변한다." 등등. 이런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완장혐오자'도 많은게 사실이다. 정치평론가, 사회평론가들도 '완장으로 대표되는 권력에 민감한 한국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라며 이 부분을 꼬집는다.

완장은 어떤 집단의 리더급 역할이나 권한을 가진자에게 보통 주어진다. 전임자의 권력과 권한 등이 전적으로 후임자에게 이전된다는 것을 완장의 인수인계가 상징적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완장에는 간단한 단어가 크게 적혀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장, 선도, 회장' 등 그 완장 자체로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옛날옛적 모중대 기율경.

그 완장의 힘을 몸소 체험할 수 있고, 부대원 관리에 십분 활용하는 곳이 바로 전의경 중대이다. 어떻게 보면 참 구시대적이다. 새마을운동 때나 가능할 것 같은 일이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군조직의 경우에는 이런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전의경의 경우 전국의 거의 모든 중대에 '기율경'이라는 보직이 있다. 보통 중대의 왕고급인 수경 계급이 맡기 때문에 '기율수경'이라고도 부르며 왼쪽 팔에는 '기율' 혹은 한자로 '紀律'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완장을 차고 다닌다.

기율경은 간단히 말해서 질서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고참대원이다. 중대마다 한 명이 존재하며 그 중대에서 지휘관을 제외하고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참고로 국방부 소속 군대의 경우 간부와 병사로 분류하지만, 경찰조직은 순경부터 시작하는 직업경찰을 '직원', 전의경을 '대원'이라고 분류한다. 기율경은 고로 '대원들의 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기율경의 역할이 무엇이냐. '기율'이라는 말이 넌지시 짐작할 수 있게 해주듯이 중대의 기율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이 추상적인 표현을 등뒤에 업고 기율경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특히. 직원인 지휘관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중대전체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 고로 그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기강이 해이하다고 느껴질 경우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원들의 기율을 잡는게 기율경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 중대 같은 경우는 전반기 당직근무를 하는 것이 원칙이며, 평소에는 2시간 간격으로 중대의 각 장소에 순찰을 돌며 특이사항을 점검한다. 또한, 일석점호나 일조점호를 지휘관이 정식으로 취하기 전에 먼저 각 내무실에 들어가서 인원점검(예비점호)을 하고, 이 시간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갖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기율경이 성격이 더럽거나, 기율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중대에 벌어질 경우 예비점호시간은 중대원 모두에게 군생활 중 가장 지옥과 같은 시간으로 변모한다.

이런 기율경과 비슷한 보직으로는 '중대무전병'이 있다. 보통 출동을 나갔을 때 중대를 대표하여 상급지휘기관의 무전을 듣고, 그 무전을 소속중대의 각 대원들에게 다시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중대무전병은 경찰무전음어에 능통해야하며 시내에 갖가지 출동이 잦은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에 중대무전병이 무전을 잘못이해하는 등의 실수를 할 경우 수많은 중대가 함께 움직이는 진압작전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중대무전병은 여러개의 무전기를 동시에 들으면서 한시도 긴장을 놓으면 안되는 중요한 보직이다.

요즘엔, '중대무전병 = 기율경'

간단하게 말하면 '내무실에 있을 때는 기율경이 왕, 출동을 나가면 중대무전병이 왕'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전의경 인원을 차츰 감축하면서 각 중대의 정원 또한 감소하고 있어서 웬만한 중대의 경우 기율경과 중대무전병을 한 명이 겸직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기율경 = 중대무전병' 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전의경들중에 무전기가 무전조끼에 여러개 꽂혀있고, 왼쪽 팔에 기율완장을 차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중대의 기율 & 중대무전병이다.

아래 사진은 후임의 생일파티 후, 기념사진을 찍은 우리 소대. 외박, 휴가자가 많아서 사람이 좀 적다.

우리 소대. 오른쪽의 기동복이 나 :)


그렇다면, 기율경의 장점은 무엇이냐. 일단, 소속 중대원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명예직이며, 갖가지 근무를 열외할 수 있다. 또한, 우리 중대는 '중대무전병 노고치하 특별외박'을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서 같은 날 입대한 동기들에 비해서 사실상의 전역을 조금이나마 앞당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방중대의 경우, 중대무전병을 '중대전령' 혹은 '중대지병'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고, 기율완장과 더불어 훈련소에서 볼 수 있는 빨갛고 각진 기율모를 착용하기도 한다. 서울중대는 빨간 기율모를 착용치 않고, 심지어는 기율완장이 없는 중대도 많다. 간혹 이런걸로 "지방은 별것도 없으면서 왜 저렇게 똥폼잡냐"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래봤자 민간인이 보기엔 다 불쌍한 전경일뿐.

나는 전역이 100일 남았을 때, 이 보직을 물려받게 됐고 현재 만2주 정도됐다.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이 짧은 시간동안의 확실한 변화는 성격이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기율경이 되기 이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쓰던 일들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며 험한 언어사용이 더욱 늘었다. 이게 한국사람에게 유난히 영향을 끼친다는 '완장의 힘'인가. 사람들이 비꼬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가끔 씁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게 다 '잘 해보자'고 하는 것. 내게 이 역할이 맡겨진 이상, 난 우리중대원 모두를 함께 끌어안고 앞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고, 이들 또한 날 믿고 내가 전역할 때 까지 잘 따라와주리라고 믿는다. 구타사고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 없이 선후임간의 위계질서가 바로 선 평화로운 의경 중대를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우리 중대의 기율경으로서 갖는 소임이고 목표이다.

학창생활에 하는 반장, 부반장과 경직되고 철저한 위계질서 사회인 군대에서의 기율경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인생에 단 한번 뿐인 군생활 중에 100여명의 사람을 대표하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아무나 얻지 못하는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난 별것도 아닌걸로 맨날 중대원들을 괴롭히던, 공포의 대상이었던 몇몇 '쓰레기' 전임 기율경들과 다르다고 후임들에게 천명했다. 나의 이러한 '햇볕정책'이 먹힐지 안먹힐지는 앞으로도 계속 두고 볼 일이다.

내가 신병 때 눈도 제대로 못맞추던 그 기율경의 왼팔에 감겨져있던 완장이 지금의 내 팔에 감겨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겪었던 숱한 군생활의 역경과 고난, 시간의 흐름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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