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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실패는 찬란한 삶의 증거이다. (복자에게 <김금희 著>)

by hyperblue 2021. 11. 7.

 

http://www.yes24.com/Product/goods/92077827?art_bl=13013012 

오랜만에 심금을 울리는 소설책을 만났다. 제주도 옆에 위치한 가상의 섬, '고고리섬'에서 유년시절을 잠깐 함께 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작가가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듯한 아름다운 문체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진다.

"복자에게"라는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종교서적인가?' 란 생각을 했다. 천주교에서 '복자'란 교황청에서 성인으로 추대되기 전 단계인 분들을 일컫는다. 책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영초롱'과 제주의 어린시절을 함께 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친구의 이름으로 소개되지만, 작가도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 내용 중에 소개되어 있긴 하다. 영초롱이 어렸을 때는 성당에 다녔으나 지금은 냉담중인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책 곳곳에 표현되어 있는데, 늘 냉담과 복귀를 반복했던 나의 가톨릭 신자로서의 삶과 겹쳐져서 더욱더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누가 들어도 세례명인듯한 '엘리사벳'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불리는 의료원장의 아내 역시 신자로 소개되는데, 작중 엘리사벳은 굳이 따지자면 사회적 위치와 권력으로 작중 재판 속 원고인 복자와 동료 간호사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세력으로 대표되기도 한다. 종교의 신성한 이미지가 꼭 세속의 영역까지 아름답게 일치하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을 반영한 구성이라고 느꼈다. 

주인공인 영초롱의 책 속 성장기 동선도 나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리만큼 겹쳐서 괜히 소름끼쳤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김포공항 옆 방화동, 지금 부모님께서 계신 본가가 있는 독산역을 지나가는 1호선의 풍경 등 나의 생활권과 유사한 곳들이 작중 주인공의 주변환경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였지만 싫지 않았다.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전학, 그 과정에서 늘 있는 석별의 아쉬움- 나의 기억 속에도 관련된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작중 고오세가 섬을 떠난 영초롱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편지를 썼듯이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간, 당시에 좋아했던 한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몇번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악필과 달리 당시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는 곧은 정자체로 예쁜 말들을 한땀한땀 써내려간 그 친구의 편지를 아파트 우편함에서 꺼냈던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20년도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아직 생생하다. 나는 오세처럼 그 친구의 집에 감히 찾아가볼 생각도, 커서 다시 연락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으로 용기내어 직접 제주에서 상경하는 모험을 감행한 오세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다. 유년시절의 순애보같은 기억, 그리고 그것이 꼭 열망과 같이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는 않는다는 것- 일견 씁쓸하면서도 정확한 현실의 반영이라서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다. 어릴적 짝사랑을 극적으로 만나서 다시 예전의 감정을 상대에게 고백하고, 연인이 되는 이런 연애소설/영화 같은 진부한 러브라인이 없었다. 사실, 내심 기대하기는 했다. 어쨌거나 답장 없는 연애편지를 끊임없이 보내다가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이미 영초롱이 이사가고 없는 그 집에 직접 찾아가는 고오세 같은 열정과 용기가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과연 있었는가.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랑은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책을 읽고나서 과거의 내 연애/지나간 짝사랑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떠올리면 늘 아팠다. 결과적으로 실패 그 자체인데, 좋게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밀물이 곧 들어닥칠 것을 알면서도 쌓아올리던 모래성 같은 관계도 있었고, 콘크리트 같이 단단한 구조물이라 여기던 관계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산산이 조각나고 부서졌다. 의도적으로라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는 '다음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그 실패들 속에는 언제나 어두운 방 한켠에서 울고있는 내 모습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하게 된 만남의 끝일수록 더욱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런저런 변명으로 관계의 실패를 합리화하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입준비, 군입대, 수험생활' 등 유성매직으로 사유를 써서 어거지로 마음 속 생채기 위에 붙이던 반창고들이 '그냥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지금의 내겐 딱히 여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내가 못났고, 나쁜 사람이고, 모자라기에 이별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었다고 자책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업실패로 인해 어린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외딴섬에 살도록 만든 영초롱의 아버지. 미워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그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IMF사태로 아버지께서 직접 꾸리던 회사의 사세가 기울고, 집안경제마저 함께 휘청이던 그 시절을 경험한 내가 이제는 지금의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표현없고 무뚝뚝한 전형적인 경상도/대구 사나이인 아버지셨지만, 대기업 입사와 함께 사회에 첫발을 들인 내게 써주셨던 '네가 자랑스럽다'는 장문의 편지- 당신께서도 부끄러우셨는지 나 몰래 가방 안에 넣어두셨다는데 연수원 침대 위에서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눈물을 적신 기억이 난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직접 말하기에는 아직도 낯부끄럽지만, 당시에 실패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이지 아버지의 삶이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업 실패 뒤에 겪으셨던 무수한 고초를 가장의 책임감으로 묵묵히 이겨내시고 지금의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은 강인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존재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삶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실패들은 헬스장에서 생기는 굳은 살 마냥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인 것이다.

치기어린 시절에는 내 삶에 '실패'란 없다고 생각했고, 어찌보면 자만했다. 실제로 그 시절의 내 좌우명 또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였다. 학업이 모든 것의 우선이었던 그 시절, 노력과 약간의 운이 뒷받침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었고, 목표 달성의 과실은 언제나 달콤했다. 하지만, 세상이 더 이상 내 생각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20대 중반부터 경험한 실패들은 언제나 극심한 고통과 함께 나를 침전시켰다. 수험생활, 연애, 주식투자 등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고 작은 실패의 충격은 가끔 삶의 끈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내 마음속 깊고 검은 바닷속 어딘가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보다 선명해졌다. 나만 이 세상 고통의 주인공이 아니란 것, 내가 경험한 실패들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 실패가 없는 삶은 반쪽짜리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책의 주제를 비단 '실패'로 국한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수많은 이별과 실패가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을 마음 속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린 시절의 영초롱처럼 '하하하하하하하'라고 억지로나마 웃으며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결론내리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친구, 은사, 연인, 선후배 등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은 어찌됐든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이다. 작중 영초롱처럼 부치지 못할 편지의 수신인인 '복자'가 지금의 내겐 없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언젠가는 아름다운 제주에 다시 가서 책 속에서 느꼈던 많은 감정들을 다시 한번 음미하리라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좋은 소설을 통해 올해 다소 차가워진 나의 마음 속을 다시금 따뜻하게 데워준 김금희 작가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좋은 글은 언제나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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