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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늦었지만,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돈의 속성 <김승호 著>)

by hyperblue 2022. 1. 22.

돈의 속성 &lt;김승호 著&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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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알아서 들어오는 월급은 당연해졌고,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도 않다. 그냥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무뎌진다는 게 이런걸까. 심지어 회사일마저 작년부터 하드코어 레벨로 치닫다보니 월급날을 기다리던 마음의 여유 마저 사라져버렸다. 그냥 정신없이 야근하고, 주말에도 고통받다보면 어느새 월급날이 다가온다. 그냥 그랬다. 나는 회사가 내게 던지는 고통 속에서 늙어갔고, 적지도 많지도 않은 월급은 나를 어떤 식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저 거리낌없이 쿠팡이츠를 시켜 먹게 하는 소소한 여유를 가져다줬을뿐. 이것도 일종의 시발비용이라고 해야하나. 이 시발비용은 과도한 지출과 건강 악화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아직 대학생 신분일 때 처음 현재의 회사에서 인턴쉽을 하면서 받았던 거진 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을 때가 가장 기분 좋았다. 처음으로 정장을 어색하게 입고 모두가 아는 대기업 로고가 번쩍이는 회사 건물로 출퇴근을 하며 월급이란 것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괜시리 가슴 벅찼다. 진정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 같은 느낌. 책에서 저자는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공무원을 꿈꾸는 청년들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혀를 끌끌 차지만 그래도 그 때는 참 기분 좋았다. 첫 월급, 첫 출근의 짜릿함.

그리고 곧 회사생활 9년차가 되는 2022년 1월 말- 그 때 이후 지금 바뀐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딱 하나, 생물학적 노화의 체감. 어렸을 때 부터 새치 하나 없이 30여년을 보냈는데, 얼마전에 정말 상상도 못할 새하얀 긴머리를 회사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짧은 새치가 아닌, 전래동화 속 산신령의 그것 마냥 긴 흰머리 한가닥. 바로 사무실 동료에게 뽑아달라고 했는데, 그 날 하루 종일 우울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그간 웅크리고 있던 노화현상이 있는 힘껏 살갗을 뚫고 발현되고 있다는 서글픔 때문에, 그리고 이 시점까지 크게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충동적으로 몇년 전에 사놓고 한 달에 한 시간도 안타는듯한 소형 국산 SUV 한 대, 아직은 전혀 가시화 되지 않는 음악적 꿈을 좇는다는 핑계로 출가를 하여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맡겨놓은 전세보증금- 이것 외에 나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특별한 자산이랄 것은 딱히 없었다. 회사생활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는데, 나 대체 뭘 한거지?

나는 회사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돈을 다루는 직무를 계속 하고 있다. 돈의 흐름을 단순히 기록하는 회계업무 담당자가 아닌, 실제로 돈을 움직이는 실무자로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기업 재무직군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무엇을 하든 기본적으로 '0' 6개는 생략하고 시작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에 15백만불을 이상의 외화를 내 판단으로 사거나 팔 때가 많다. USD 15,000,000.00. 한화로 환산하면 현 시점 기준으로 180억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은행 FX 딜러에게 '15개 3.5에 sell이요' 라는 한 문장으로 큰 금액의 거래를 쉽게 확정 짓는다. 여기서 얘기하는 '1개(1백만불)'도 지금의 내 연봉으로는 한 푼도 안쓰고 모아도 답이 안나오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무뎌졌다. 나의 일상생활에서도 함부로 0 여러개를 절사하기 일쑤였다. 어찌보면 회사에서 많은 재량과 권한을 위임받은 이 직무는 나 개인에게는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값비싼 최신 핸드폰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꾸고, 필요치 않은 용도에도 큰 돈을 거리낌 없이 움직이게 했다. 조금 더 적나라한 표현으로는 '겁대가리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한 것과 동일했다. 돈을 쉽게 여기면, 쉽게 들어왔다가 쉽게 나가며 작은 돈 조차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면 결코 자산을 증식할 수 없다는 저자의 충고가 자꾸 뒷통수를 얼얼하게 했다.

사실, 나 스스로는 돈에 대한 욕심이나 허영이 그닥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이 나이 때 되면 하나둘씩 마련한다는 명품 브랜드도 잘 모르고, 갖고 있는 것도 없다. 값비싼 수입차에 대한 로망도 딱히 없다. 그렇다고 술이나 유흥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재정적으로 이룬 게 없다'는 나의 씁쓸한 자기진단은 어디에서부터 근원적 이유를 찾아야 할까.

동년배 친구들이 일찌감치 결혼하고 자의 반/타의 반으로 적당한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부동산 투자를 통해 부를 창출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어찌보면 무분별한 삶을 살았다. 작은 돈도, 큰 돈도 귀히 여기지 않았으며 회사에서 큰 돈을 다룬답시고 훨씬 작은 자릿수의 내 자산을 일종의 사이버 머니처럼 취급하며 지금까지 살았던 것 같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 아닌 사치랄까. '법의 무지는 용서되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돈에 대한 무지 또한 용서되지 않는 것이었다. 매일 거시경제의 금리, 환율을 논하며 큰 숫자들만 쳐다보고 회사의 손익을 논하고 있는동안 정작 개인의 자산 관리는 구멍이 나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돈에 대해 잘 아는 축에 속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 있으나 가장 무지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값비싼 캐리어를 잔뜩 뽑아서 비장한 마음으로 계산 끝에 적진에 들어갔는데, 정작 나의 본진 일꾼들이 무지와 방관에 다 털리고 있는 그런 상황. 마지막 책장을 덮자 부끄러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적지 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저자를 비롯하여 큰 부를 이룬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비슷한 것 같다. '근로소득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 나는 애초에 부자를 꿈꾸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 따위는 타인과 출발선조차 다르기에 되지 못할 것이란 조금은 안일한 의식, 패배자 마인드.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조금 더 명료해졌다. 부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작은 실천도 없이 지금처럼 계속 산다면 부자는 커녕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지금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언제든 끊길 수 있는 것이었다.

연초부터 많은 반성을 하게 한 책 '돈의 속성'은 단순히 돈 버는 법, 부자가 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이전에 읽었던 '부의 추월차선'과는 결이 달랐다. 마냥 "부자가 되고 싶으면 당장 너의 사업을 해! 더 늦기 전에 도전해!"라고 다짜고짜 독자를 회사 밖으로 내몰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는 '돈'을 다른 어떤 것으로 치환해도 대부분 말이 됐다. '사람'이라는 단어로 치환했을 때도 그랬다. 작은(낮은) 사람을 귀히 여겨야 하고, 쉽게 온 사람은 쉽게 떠나고 등등. 세상을 살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대할 때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인걸까. 조금은 투박한 디자인의 책에서 향기가 났다. 돈 얘기만 하는, 빳빳한 신권냄새가 나는 책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이야기해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따뜻한 조언을 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다보니 계속 금융시장에 발을 듬뿍 담근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조금 더 유리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 유리한 상황이 지금까지와 같이 오히려 내 삶에 독이 되지 않도록, 올 한 해는 그간 잘못되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해가 될 수 있도록 저자의 가르침을 다시 곱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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